[덕암칼럼] 물가는 오르고 기온은 낮아지고
[덕암칼럼] 물가는 오르고 기온은 낮아지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1.25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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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명절 끝 무렵 어제는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냉장고로 만들었다. 지난 23일 밤 영하 1도를 기점으로 매 시간 마다 떨어진 기온은 24일 새벽 3시 영하 11도까지 떨어졌고, 오전 8시 기상청의 예보보다는 다소 나았지만, 영하 13도까지 떨어지는 등 올겨울 들어 최악의 날씨가 24일 내내 살벌한 기세로 옷깃을 여미게 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27도까지 떨어진다고경고하면서 온갖 부산을 떨었고 항공기 전면 결항 조치까지 내렸지만, 다행히 호들갑에 그쳤다. 춥다고만 했지 걸맞은 대안은 없었다. 단전 가구들의 냉기 어린 방바닥과 폭등한 전기세가 무서워 전열기구조차 못 켜는 서민들의 한숨은 뒷전이다.

문득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의 남한산성이 떠오르는 건 참담한 혹한에도 성을 지켜야 하는 조선의 군졸들이 요즘처럼 추운 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상상에서다. 오도가도 못하는 성안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 받는 백성들은 제 먹을 좁쌀 하나 없이 빈손으로 입성하는 인조와 대신들을 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려가 컸다.

권력 앞에 나약한 민초들이야 한낱 파리 목숨만도 못한 게 현실이었고 그렇게 입성한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청나라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와 치욕을 참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화파가 날 선 대립을 벌이며 47일간 버티는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과 맞물려 있는 것은 어떤 점일까.

전쟁은 힘의 논리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는 것처럼 약한 자 또한 살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주장이 387년이나 지난 지금과 비교되는 것은 그 당시 청나라의 횡포 보다 조정의 대신들과 군사들이 저만 살기 위해 백성들을 상대로 벌인 위화감이 판만 다를 뿐이지 결과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 하면 국민이 편하고 반대로 못 하면 사는 게 괴로울진대 젊은이든 늙은이든 여성이든 집안의 가장이든 어느 계층 하나 행복하다기보다 힘들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오로지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나 정치하시는 분들의 녹봉은 제때 받을 수 있으니 자영업이나 기타 수당에 목매어 버티는 국민들 입장이 뭐가 다를까.

걸핏하면 이래저래 수당 명분 만들어 국민들에게 수 십만 원 상당의 현금으로 달래고 다시 세금폭탄으로 거둬들이며 빙빙 돌아 전기요금, 가스요금은 천정부지로 오르니 그게 그거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설 연휴가 지나면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된다. 서울시는 2월 1일부터 서울 택시 기본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고, 지하철·버스 요금도 300원씩 올리는 것을 목표로 경기도, 인천시, 코레일 등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굳이 항목별로 몇 %가 올랐다고 이전 비용과 비교해서 낱낱이 적어야 실감이 날까. 오를 땐 급히 내릴 땐 천천히, 산지에서 아무리 저가라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건 그리 체감되지 않는다.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5%를 넘어섰고 유가나 가스요금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맞이했는데 전쟁 핑계 대며 오를 땐 사정없이 인상되었다가 인하할 때는 생색만 낼 뿐 그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승용차 타는 국민이 인원수가 더 많아 표를 더 얻을 수 있어서라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어째 소비성이 강한 휘발유가 화물이나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연료인 경우보다 더 쌀까. 국회에서 유류세를 낮춘 게 소비자 이익도 있었겠지만, 정유사가 더 이익을 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 바 있다.

정부가 원가를 공개하라니 업계는 팔팔 뛴다.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도 아닌데 과민한 반응이다. 한때 건설업계에서 시공 원가를 공개하라니 난리를 친 것과 유사하다. 백성이 굶주려도 서로 자기 먹을 것만 챙기는 과거와 현재 벌어지는 국민들의 애환이 그리 다를 바 없다. 병자호란은 청과의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깨진 암울한 흑역사였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인 5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간 것이나 2023년 60만 명의 젊은이들이 직장이나 생계 수단 없이 고립, 은둔 되어 있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 삶의 극단적인 상황은 외부침략보다 내부적인 고착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이웃이나 국민 전체가 공감하는 어려움은 머리를 맞대거나 알아줄 수도 있지만 혼자 방치된 상황은 당사자만이 아는 처참함이기 때문이다.

인조가 신하에게 식량의 재고를 묻자 신하가 20만 원으로 달래고 다시 50만 원을 걷으면 된다고 보고하고 인조는 그리하라고 답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당시 인조는 판단력과 결정력, 그리고 책임감의 부재로 권위만 내세우고 신하들은 당파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만 우겨댔다.

그 와중에 판세를 읽은 이조 판서 최명길이 목숨을 걸고 국민들의 생명을 부지하고자 하나 이 또한 온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목을 베라고 아우성을 친다. 현재가 난국이다. 현대판 이조판서가 몹시도 아쉬운 시절이다. 어제 오늘처럼 한파가 서슬 퍼런 기세로 가난한 국민들의 헐벗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여전히 서울 여의도 국회는 정녕 뭐가 급한지 뭐가 중요하지를 간파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로지 얼마 남지 않은 전당대회가 중요하고 누가 윤심을 거스르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검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샅바 싸움도 본선을 향해가고 있다. 문득 성첩을 지키던 군사들의 가마니를 빼앗아 말을 먹이고 그래도 굶어 죽은 말을 고기로 삶아 먹이는 아둔함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대장장이가 남긴 말이 명언이다. 백성의 입장에서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모르지만 그저 봄에 씨앗 뿌려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배곯지 않는 세상을 바랄 뿐이라는 하소연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저 명분과 각자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언제쯤 철이 들어 국민의 안방에 관심을 가질까.

끝으로 자결을 선택한 최명길이 말한다.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야 세상은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라고. 여야가 다 바뀌는 날이 올까. 변방에서 숨죽이며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건 국민들을 위한 학자, 종교지도자, 애국자들이 도처에서 참고 기다린다. 영화 남한산성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지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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