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성 칼럼] 사회에 만연한 고질병 “탓병” 모든 것은 나(내 탓)로부터 시작이다.
[구갑성 칼럼] 사회에 만연한 고질병 “탓병” 모든 것은 나(내 탓)로부터 시작이다.
  • 구갑성 논설위원 kmaeil86@kmaeil.com
  • 승인 2023.01.26 09: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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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성 논설위원
▲구갑성 논설위원

“Take credit for the good, and blame others for the bad”

좋은 것에 대한 공은 (내가) 차지하고 나쁜 것은 남을 탓한다" 일이 잘 되거나 못 되는 것을 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함을 이르는 말로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상처를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부모나 조부모 등 가족력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유전자 때문에 당뇨병이 불가항력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 ‘비만’이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당뇨병 유발 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뇨병은 ‘조상 탓’이 아닌 ‘내 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요즘 국내 정세가 혼란스럽고 화가나고 거북하다. 이로 인해 우울, 분노,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신이 원치 않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우리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다면 이 같은 국민감정은 상실감에서 오는 ‘진짜 슬픔’이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다. 상실감은 사적인 영역 내에서 일어나는 감정 같지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이 같은 상실감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타인에 대한 배척 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타락하고 부패한 정당들과 대통령의 무능함에 상실감에 빠져있다. 정치적 타락과 부패에서 비롯되는 집단 상실감은 개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거나 사별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강제로 밀어낸다고 해서 신속하게 사라지는 감정도 아니다. 

상실감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사회복지전문가 로버트 주커는 상실(로스)의 이론을 다시 3단계로 나눴다. 우선 초기에는 불안감, 무기력증, 진실에 대한 부정과 같은 반응이 일어난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는 생산성 없는 행동 같지만 사실 이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기 위한 ‘완충작용’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분노, 두려움, 슬픔, 불안감과 같은 강렬한 감정이 표출된다. 이 같은 감정이 촉발될 땐 운동을 하거나 심리치료사와 대화를 나누는 등 긍정적인 방식으로 쌓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수용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상실감에 빠졌던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에 동화되고, 이에 어우러져 사는 방식을 찾게 된다. 이 같은 극복단계를 묵살하면 상실감을 극복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같은 극복단계를 거치려면 현재의 복잡한 국내외 정세가 장기화되지 않아야 한다.

지저분한 상황이 지속되면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상실감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들의 건강(공중보건향상)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국민들이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탈바꿈 되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정상적 생활의 부재로 인한 상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A집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1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다른 일자리를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최근 구직 활동마저 포기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 김 씨는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을 자기도 어렵다. 기분도 항상 우울한 상태”라고 밝혔다.

B집단은 코로나19로 인한 구직난, 거리 두기로 인한 사회관계 부족,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우울감 등을 호소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동호회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크게 줄였다는 C집단은 “집밖 외출을 자제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도 급격히 줄었다”고 했다.

김 씨는 “예전엔 지인을 만나 얘기하거나 모임에 나가 활동하면서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지금은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D집단은 “비대면 수업을 받다 보니 주변 친구들과 관계를 맺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자기계발이나 취업 준비에서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된다”면서 “특히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호소했다.

또한 ‘자영업자의 몰락..’ ‘자영업자 휘청, 중산층 붕괴..’ 코로나 때 모든 일간지와 포털을 장식한 기사들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전 정부는 지나치게 섣불리 시작했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자영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가진 자들을 포용하지도 않았다.

고용은 쇼크 수준에 이르렀고, 경제는 파탄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데도 경제참모들은 남탓만 하며 각을 세웠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전 정부가 서민경제를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 결국 그 사이에 낀 국민들만 죽을 맛이었다. 경제는‘이념’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 문제에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마르크스도 말할 정도니까? 그런데도 이념으로 경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그런 자를 포퓰리스트라고 부른다. 포퓰리즘 정치권력일수록 포퓰리즘을 입에 올리지 않으며, 아닌 척 행세한다. 경제 정책의 실패를 기존 엘리트와 경제 권력 탓으로 돌린다면, 그는 포퓰리스트다.

이 방법은 특히 집권 중인 포퓰리스트에게 유용하다. ‘개혁’을 외치다 실패하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핑계 댄다. 자신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면 두 가지 이득이 발생한다. “이념과 방향은 옳다”고 계속 우길 수 있고, 지지층을 결집해 반대 세력을 더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예전의 정부시절, 최저임금 급속 인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의 본질은 과속이지만, 대기업·건물주의 갑질 탓으로 돌렸다. 그러니 해법도 같다. 적폐 청산이다. 이념으로 경제 정책을 하다가 실패했는데 해법은 엉뚱하게 적폐 청산이라니. 어디 대통령과 정부뿐이랴. 집권 여당의 맞장구는 더 가관이었다. 2년 전,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저 임금 급속 인상 탓에 일자리가 줄어들자 “고용 감소는 보수 정권의 수출 주도, 대기업 위주 정책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전 정권 탓도 모자라 미리 야당 탓부터 한 것이다. 지금 현재의 여당이든 정부든 끊임없이 전 정부탓을 하고 있다. 모양만 바뀌었을 뿐 하는 작태는 항상 같다. 현재 나타나는 모든 문제가 전 정부탓이니 잘된 것조차 심지어 이전 자신들이 주장했던 것조차 부정하는 모습으로 건강보험 ‘최초’축소라는 희대의 희극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난방비 폭탄'과 관련해서도 현 정권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빠져나가려 하고 역시나 전 정부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개인탓 국민탓 국가탓 작금의 시대 상황을 지켜보니 참으로 앞날이 깜깜하다. 탓병의 처방전은 ‘역지사지’가 아닐까 생각 되어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결코 내 이전의 누군가를 탓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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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주 2023-02-18 01:19:39
사이다 같은 기사. 특정 정당의 지지 여부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남 탓'은 좀 갖다 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네들이 몇 년 전에 한 말을 부정하고 있는 꼴을 보면 참 가관이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국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해 정치 기사를 종종 챙겨보는데,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거 계속 봐야하는지 말아야할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기사의 마지막 문단을 보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자기수양도 못하고 집안도 정돈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무슨 정치인이랍시고 나라를 다스린다 깝죽거리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지. 경제를 이념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말씀이 인상깊은데, 경제 전문가들은 현 대한민국 경제 정책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