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한국 수어의 날
[덕암칼럼] 한국 수어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2.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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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래전 시각장애인 체험을 한다며 모 교육기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다. 교통시설 이용,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 점자 읽기 등 일정표대로 체험하며 많은 청소년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행사였다. 인간의 신체는 건강할 때는 그 가치를 느낄 수 없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이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은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는 농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농인’ 국어사전 그대로 옮기자면 귀에 이상이 있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과거에는 언어장애인 또는 그 이전에는 벙어리라는 명칭으로 불려진 바 있다.

필자가 장애인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지금처럼 칼럼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 과거에는 벙어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농인이라고 표현했다가 관련 기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개칭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에는 어떤 단어였는지를 어필한 것조차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며 지적을 받은 것이다.

가령 시집간 며느리가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속담을 전제로 어려운 시집살이가 과거에는 그렇게 표현된 바 있다고 적었다가 경고를 받은 것이다. 물론 지금은 농인, 시각장애인, 언어장애인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단어 사용의 뜻보다 일단 발언 자체를 문제 삼는 점에 대해 상식이 있는지 의문이 가는 상황이었다.

오늘의 주제인 ‘한국 수어의 날’은 한국 수어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앞서 농인이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며 수어는 이들이 언어를 소리 대신 표현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한국수어란 대한민국 농문화 속에서 시각·동작 체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고유한 형식의 언어를 말하며, 2016년 한국 수화 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어와 동등한 공식 언어로 법제화된 것이다.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사용자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공식 언어로 정해진 2016년 2월 3일을 기념하여 ‘한국 수어의 날’이 제정된 것이다.

앞서 거론하였듯 장애에 대해서는 직접 체험하고 역지사지로 당사자의 불편함이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농인에 대해서는 장애인복지법 등의 법률을 통해 수화언어 통역 등에 대한 제도를 확충하는 등 농인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시행되어 왔으나 좀 더 구체적인 사회적 합의가 요청됨에 따라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고 같은 해 8월 4일 시행된 것이다.

2019년 12월부터는 공공수어 통역 지원체계를 구축해 수어 사용 환경을 개선, 정부 정책 발표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브리핑 등에 수어 통역을 제공함으로써 농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수어 관련 교육기관의 지원과 공공수어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시행과 함께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법정 기념일 제정이 추진된 것이다.

관련법 제17조를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수어의 날 기념행사 등을 실시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 특정 단체에서 행사를 주최한 적은 없고 해마다 한국수어의 날이 속한 1주일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한국수어 주간이 운영된 바 있는데 관련 토론회, 세미나, 그림엽서 및 동영상 공모전 등의 행사가 펼쳐졌다.

2021년 2월 3일의 첫 기념식은 국립 한글박물관 강당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에 따라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된 바 있다. 당연히 올해도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지침이 해제된 만큼 많은 행사들이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할 수만 있다면 언론사에서 주관하여 한국 수어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했으면 한다.

장애는 선천적 또는 사고나 상해에 의해 후천적 요인으로 겪게 되지만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 어려움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간혹 스포츠 경기나 중요한 행사 진행이 상영될 경우, 모니터 한쪽 면에 손동작으로 말을 대신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간단한 손동작이라도 소개하고자 한다.

국가적으로 약간 차이는 있지만 한국수어는 스마트폰에서 통역 기능도 없어 국민들의 작은 관심이면 급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화장실’은 손가락바닥으로 5개를 다 펼친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를 ㄷ자로 굽히면 된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우측 검지로 볼을 찍고 손바닥으로 얼굴전체를 둥글게 돌리면 된다.

‘실수’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양쪽을 위·아래로 교차하면 된다. 알고 나면 쉬운 수어, 농인들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소리 내지 말고 의사소통을 해야 할 때나 급할 때 수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새로운 차원의 지적 재산이 될 수 있다.

시간이 날 때 하루 30분 정도라도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의 한국 수어사전을 열어보면 누구든 무료로 쉽게 접속할 수 있다. 같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높을 수 있고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다. 유행가는 한번 들으면 외워진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몇 시간 들여다 볼 시간 중 잠시만 짬을 내어 수어를 배워본다면 발상의 전환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소득이 아닐까.

사람이 살면서 해볼 수 있는 많은 것들 중, 수어를 배워두는 것은 또 한 가지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며, 한번 배워두고 수시로 사용한다면 쉽게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필자도 사실 바쁘다는 이유로 사전을 펼쳐 수어를 익힐 여유가 없지만 남에게 권할 것이면 본인도 기본은 해야 맞는 것이다.

적어도 간단한 수어는 남과 자신을 위해 배워두길 권해 본다. 오래전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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