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정보가 가득한 라디오
[덕암칼럼] 정보가 가득한 라디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2.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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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45년 8월 15일 오후 12시 서울 한복판 일본 NHK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쇼와 천황의 옥음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하자 일장기가 내려졌다. 전세계적으로 5,432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였지만 삽시간에 퍼진 소문을 통해 대한민국은 36년간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평화는 5년도 채 가기 전에 6·25전쟁이 발발 다시 35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는 한반도의 암흑기가 있었다.

이때에도 국민들은 대전 충청남도지사 관저에서 이승만 前 대통령이 HLKA 서울중앙방송의 라디오 전파를 통하여 전국에 방송했던 연설은 6·25전쟁 초반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당시 방송은 충남도지사 관저-대전방송국-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하여 HLKA 서울중앙방송의 전파로 전국에 중계되었다. 이는 당시 서울중앙방송국만이 전국 방송이 가능했으며 지방방송국들은 모두 500kw 내외의 소규모 지역방송국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라디오는 유일한 소식통의 과학적(?)기구였고 세월이 더 흘러 라디오는 국민들의 귀중한 재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농촌에서도 운전기사들도 심지어 학생들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정규방송은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라디오는 택시운전기사나 중장비, 유선방송이 어려운 오지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아파트 주방에는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주부들의 가사나 일상생활에 심심찮은 친구가 됐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는 인류가 적응하기도 전에 먼저 한 걸음 나가는 시대에 도달했다. 어떤 문명의 도구는 미처 사용법도 다 익힐 여유도 없이 다음 모델이 출시되고 자동차나 기타 전자제품의 사용 용도는 제작사와 사용자 간의 견해 차이가 보통이 아니다.

오늘은 대표적인 예로 라디오에 대해 집중 해부해 보자. 먼저 라디오는 금성사라는 회사에서 생산했는데 지금의 LG전자가 전신이었다. 1959년 11월 15일 진공관식 A501형 라디오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대국민 홍보 정책의 일환으로 농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며 널리 보급됐으며 2013년 8월 27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559-2호로 등재됐다.

일부 한정된 애청자들이 듣고 있는 라디오 청취율 순위를 보면 SBS 파워FM 중 김영철의 파워FM, 붐붐파워, 박소현의 러브게임, 두시탈출 컬투쇼 등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모여있는 곳이다. 7년 연속 라디오 청취율 순위 1위를 기록하였으며 TBS 교통방송에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저녁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신장식의 신장개업이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CBS 음악 FM 등 많은 정규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돌이켜보면 라디오 방송은 1920년 미국에서 시작됐으며 1921년 말까지 미국에서는 총 8개의 방송국이 운영됐다. 이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며 대중매체로 자리 잡자 UN은 라디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방송 제작자들 간의 네트워크와 국제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2012년 2월 13일을 ‘세계 라디오의 날’로 지정한 것이 11년 전 오늘이다.

라디오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매체로 전세계 75%가 라디오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최소한의 전력으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방송 송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분쟁, 자연재해 상황 속에서도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필수 수단이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도 라디오의 역할은 상당했다는 게 현지 구호대의 전언이다.

월드비전 재난지원 키트에 라디오가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불과 30년 전만 해도 라디오는 텔레비전 이전의 최고 소식통이었다. 라디오 사연에 선정되기 위해 열심히 엽서를 만들어 보내고 최신 유행가를 알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라디오는 옛 추억과 낭만 정도로 남게 되었는데 청취율을 보면 2011년 34%에서 2020년 16%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아직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라디오는 가장 사랑받는 방송매체다. 네팔은 라디오로 조혼과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있는데 네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시골 지역에 거주하면서 약 1,500만 명이 모든 정보를 라디오에 의존하고 있다. 남수단에서도 농사에 대한 각종 정보를 라디오에서 얻고 있으며 우간다에서도 코로나19로 학교가 폐쇄되자 1,50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라디오로 학습을 계속할 수 있었다.

소중한 정보 라인이 텔레비전의 등장과 원하는 오디오의 탄생으로 일방적이었던 방송이 외면 당하는 것은 자연스런 물질문명의 변화중 하나다. 어쩌면 이런 날들을 대비해 엽서나 퀴즈 상품으로 애청자들을 달랠 것이90 아니라 프로그램 편성이나 내용에 더 많은 정보를 준비했더라면 지금도 청취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등산이나 낚시는 물론 일을 하면서도 각종 음악과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비록 눈에 보이는 게 없어 스마트폰에 밀리기는 했지만 여전이 라디오는 우리 일상에서 소중한 친구다. 문명이 발달하여 이제는 엄지 손가락만한 장치에서도 온갖 방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자칫 화려한 장면의 눈요기 거리가 풍부한 유튜브로 인해 소외되기는 했지만 한여름 에어컨보다 실바람이 자연스런 시원함이 별개 이듯 각박한 우리네 삶의 향기가 되어 주는 라디오는 24시간 항상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

간혹 고속도로를 주행하다보면 커다란 이정표나 작은 간판으로 안내된 주파수는 같은 방송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중앙방송 말고도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내용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며, 교통체증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알 수 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라디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오늘만큼은 알아줌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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