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다케시마의 날이 일깨워준 반일 감정
[덕암칼럼] 다케시마의 날이 일깨워준 반일 감정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2.22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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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죽도, 즉 ‘다케시마’라 칭하며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은 일본 시마네현이 조례에 따라 정한 기념일로 매년 2월 22일이다.

우리말로 죽도라는 뜻인데 2005년 1월 14일, 일본 시마네현 의원들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제정하여 2월 23일에 현 의회에 상정해 3월 16일 가결했다.

구체적인 조례 내용은 제1조의 현민, 시정촌 및 현이 일체가 돼 다케시마의 영토권 조기 확립을 목표로 하는 운동을 추진,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국민 여론을 계발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다는 것이다. 일본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의 취지에 어울리는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이로 인해 한일 교류가 중단됐다.

앞서 2000년 8월에 제정한 ‘독도의 날’은 매년 10월 25일로 정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을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기념하는 날로 삼았다. 2004년부터는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으며 2008년 들어서는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국회 청원 활동도 시작했다.

2010년에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한국청소년연맹, 독도학회, 한국시인협회 청소년적십자 등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의 날 기념식을 열고 민간 취지에서 독도의 날을 선포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양국이 서로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으나 이는 처음부터 일본의 계획된 의도로 드러났다. 이미 역사적으로나 고증을 거쳐도 울릉도 부속섬인 독도는 사실상 대마도가 일본의 영토로 구분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무리한 추진이었다.

이에 격분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국적인 독도 플래시몹을 연출하여 제2의 독립 운동이나 마찬가지로 확산시켰다. 다만 다른 것은 독립운동이 일제강점기 살벌한 탄압 속에 목숨 걸고 한 것이라면 독도 플래시몹은 불특정 다수인이 연출하는 길거리 게릴라 공연으로 신명나는 음악과 함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사 내용을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자연스럽게 홍보하고 이를 인식케 하는 방법인데, 대부분의 연출자들이 애국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학생들이었으며 이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충분한 볼거리와 가치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만 두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냥저냥 잊을 일을 잠자던 애국심에 불지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선조들의 한을 상기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 독도 망언설이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발생된 일은 일파만파였다.

한국 반도체 제조의 핵심부품 수출규제에 이어 안보상 수출 우대국 지위인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내려 우리나라에 필요한 1천여 개의 전략 품목에 제동을 걸었다. 폭발물, 화기 등 직접적인 재래식 무기류 263종을 제외하면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900여종의 품목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사정권에 들어갔다.

그 중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 자동차 등 국내 수출 주력산업의 필수 소재, 부품이 적잖이 포함되었는데 훗날 이 같은 제재는 한국 기업들이 대일 의존없이 자립형 역수출 호황을 누리는 계기가 됐다.

대규모 장치 산업의 특성상 공정 한 단계만 멈추면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던 반도체 산업은 국내 전체 수출 20%를 차지하는 제1 수출 산업이었던 관계로 재계는 바짝 긴장했다. 특히 국내 화학업계의 경우 대일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분야였고 기초화학에선 국내 화학업체들과 일본 기업들의 합작 운영이 많았다.

이렇게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수출 규제로 인해 일본에도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었다. 1965년 국교 정상화이후 일본과의 교역에서 한번도 흑자를 기록한 해가 없었던 황금 시장을 포기한 것이다.

소재 수출과 가공무역으로 이뤄지는 국제 분업 구조는 상호신뢰를 전제로 하는데 일본이 이번 수출규제로 그것을 깬 것이며 자유무역의 기본원칙을 훼손한 것으로 나만 죽냐 너도 죽는다는 것을 알리는 표본이 됐다.

한번 불붙은 한일 간의 경제전쟁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일본 경제통들은 설마 하며 관망을 했고 이는 한국인들을 더욱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소비자들은 노노재팬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숨겨진 일본 브랜드 목록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브랜드 목록까지 찾아내 불매운동의 전문성을 높였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 담배와 맥주, 화장품은 물론 자동차, 관광업계와 대형마트 편의점 등 일본산 매장들은 줄초상을 맞아야 했다. 특히 10~20대의 반일감정이 들끓으면서 청소년들까지 합세했다.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이 재현되면서 돌이키지 못할 역사 수업이 이어진 것이다. 위기가 기회였다. 정부의 행정적 지원과 민간기업의 과감한 투자는 대일 의존도를 배제하면서 얻어진 것은 강한 자립도였다.

한번 불붙은 한일 간의 대립구도는 양국 모두에게 많은 손실을 입혔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뀌고 일본도 아베 前 총리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번 생긴 국민들 간의 불신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방법이 있다면 오늘처럼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 기념일을 조용히 넘어가고 한국 영토 침략에 대한 야망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역사적 전범국가임을 자각하고 일본의 새로운 미래는 침략이나 강대국으로서의 고집을 피울 것이아니라 배려와 양보로 경제강국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점수를 얻을 것이다.

북한이 걸핏하면 일본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쏴도 별다른 반응조차 못하는 것이 북한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과거 선조들이 지은 죄가 많아서 일까. 괜히 건드렸다가 중국의 심기가 노여워지면 감당하기 어려워서 일까.

가만있으면 잊을 일을 매를 번다. 세월이 백년쯤 지났으면 달라질 것만도 하건만 어찌…. 섬나라의 게다짝과 머리에 쪽을 올린 민족의 침략근성이란 피를 못 속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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