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사라진 잔칫집
[덕암칼럼] 사라진 잔칫집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2.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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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이 살면서 치러야 할 큰 행사라면 인륜지대사인 결혼식, 그리고 부부간의 금실 아래 태어난 아이의 백일잔치, 돌잔치, 연로하신 부모님의 환갑에 칠순, 팔순 등이 있다.

그리고 장례식이 있는데 모든 잔치의 요소는 해당 당사자도 중요하지만, 친척·동창·직장 동료 등 지인들의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이래서 나온 말이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의 사회적 현주소이고 부모의 장례식은 자녀의 사회적 위치라고 말한다.

축하 하객이나 조문객들의 문전성시가 살아온 모든 것을 증명하는데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애경사는 꼭 챙겨주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였다. 여기서 ‘였다’라고 전제하는 것은 점차 아닌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게 잔칫집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잔칫집은 우선 마당에 천막을 치고 한쪽 끝에는 가마솥을 건다. 또 다른 화덕에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하고 동해안에서 공수한 대형 문어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도마 위에 올라온다.

뿐일까, 빠질 수 없는 게 잡채와 홍어, 김치며 소머리 국밥이 단골 메뉴로 나온다. 이 모든 게 지금은 시중에서 전문 식당으로 자리 잡아 일반인들의 입맛을 돋우니 모든 게 원조가 있는 법이다.

하얀 쌀밥을 퍼내고 나면 구수한 숭늉이 디저트로 나올 수 있고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과 분주한 일손들이 잔칫집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결혼식은 웨딩 뷔페에서 준비한 130여 가지 음식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뿐인가, 장례식장은 상조회사에서 일찌감치 출동하여 상주의 완장부터 제단과 음식까지 일사천리로 마련된다. 기껏해야 삼일장인데 작고한 시간이 밤이면 불과 2일 만에 장례가 치러지는 것이다. 일가 친척이 도착해서 얼굴 마주 보자마자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니 점차 애경사의 분위기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과거처럼 요리를 주부들이 전담하던 시대는 지났다. 세탁물에서 설거지까지 주부들의 편의가 늘면서 이제 주부가 없어도 남편이나 남자들이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주부들이 편해진 만큼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기죽어 살던 남편들은 빨래방이나 배달업체에게 전화만 누르면 온갖 산해진미가 모두 배달되니 그만큼 의존도도 줄어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편한 게 아니라 존재 가치가 줄어든 것이다.

연령층이 젊어질수록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진다. 평생 김장 한번 안해 본 주부가 있는가 하면 제사가 무엇인지 하다못해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컵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을 통한 레시피로 잠시 반짝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우유나 빵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됐다.

혹자는 이나마 챙겨달라는 것이 간이 부은 남편이 되고 곰국이라도 끓이려 치면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갈수록 가장의 위치가 돈을 벌어주는 기계에서 그 기능이 다해지면 천덕꾸러기가 되니 현재의 60대가 설 자리는 경로당도 못 가는 처지에 공원이나 등산으로 시간을 때우게 되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잔칫집의 음식 조리는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조리과정이 전수되는 일종의 사설 학원이다. 음식 문화와 예절, 미풍양속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철학을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데 가령 가래떡을 만드는 과정이나 떡 방아로 찰떡 떡메를 치는 풍경은 우리네 한국인 정서에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추구하다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의 뜻을 전하는 과거 잔칫집이 유독 그리운 것은 오늘처럼 쌀쌀한 겨울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는 것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행복이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친척이라는 말이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형제가 있어야 아래로 삼촌·고모·이모가 있는 것이고 그래야 이종·고종 사촌이 있는 것인데, 지금같은 추세라면 적어도 20년 후에는 찾아올 친척도 없고 잔칫집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에서야 볼 수 있게 된다.

한민족의 정서는 화합과 배려가 넘치는 정다움이 있었다. 의복과 음식은 모든 제례 절차에 예절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앞으로는 아예 볼 수 없을 잔칫집은 마냥 편리함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점차 복원해야 할 우리네 소중한 자산이다.

한때 대형 웨딩 뷔페를 운영해본 경험자로서 사람이 산다는 게 별것 아니라는 말을 전한다. 돌잔치와 칠순을 치르다 보면 뻔한 식순에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 내듯 한정된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진행된다. 사회자의 터무니없는 웃음 강요에 분위기상 어색한 웃음을 보여야 하고 이제 돌잡이 아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오두방정에 소란이 극치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둘러 업고 무대를 돌아다녀야 하며 단상의 사회자가 부르는 대로 고함을 지르다가 적절한 때에 팁이라도 쥐어줘야 분위기가 안 깨진다. 평상시 찾아보지도 않았던 자식들이 갑자기 효자·효녀가 되어 한복에 짙은 화장까지 칠한 모양새는 과연 부모님이 기뻐하실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곧 사라질 풍경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없을까. 현대화된 편리함에 잔칫집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한 듯 잊어야 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주부라면 기본적인 음식은 할 줄 알아야 하고 함께 돕는 남자들의 친절한 배려가 더 정다운 것이지 마냥 손도 까딱 안 하고 전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비록 아파트 단지가 주를 이루다 보니 가마솥은 못 걸더라도 대형 뷔페 대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터를 공용시설로 마련하여 조리부터 무대까지 저가로 사용한다면 허례허식에 젖어 돈만 낭비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다 잃어도 우리 한민족의 정서나 조상들의 슬기까지는 잃지 말아야 한다.

24절기에 따라 미풍양속을 지켜가며 잔칫날은 서로 한데 모여 일손을 나눠주며 사는 맛을 지켜 가는 게 어떨까. 아파트 문만 닫으면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함께 정을 나누는 이웃으로 바꿔가는 길을 행정기관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든다면 고독사도 줄이고 없던 정도 생겨나지 않을까.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나중에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하기야 지금도 절반은 기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이긴 하지만 이쯤에서 더 가지 않으려면 필자의 의견도 정부가 좀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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