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흙에 살리라
[덕암칼럼] 흙에 살리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3.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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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먼저 오늘은 2015년 3월 27일 농림축산식품부가 흙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한 날인 흙의 날이다.

농업의 근간이 되는 흙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제정된 기념일인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흙의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적에서 제정된 바 있다.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흙은 생물의 생산, 생물의 배양과 분해·정화, 양분·수분·탄소 등의 저장, 각종 산업원료의 공급, 생물다양성의 보존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도시의 급속한 발전과 무분별한 산림 개발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흙의 날’로 제정한 것은 숫자 3이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을 뜻하는 3원과 흙토를 풀면 십과 일이 되기 때문에 글자를 풀어서 정한 날이다.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고 생각하면 쉽다.

오늘은 간과하기 쉬운 자연현상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동물은 자기 병이 나을 때까지 먹이를 먹지 않기에 자연면역의 기능을 살리지만, 사람은 뭐라도 먹어서 해결하려고 하는 점의 차이가 있다. 먹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뭘 손꼽을까.

당연히 물이다. 그렇다면 물이 어디서 나올까. 물론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도 있지만 대다수의 물은 지하, 즉 땅에서 나온다. 수돗물도 그 원천을 보면 땅에서 나오는 물을 저수지나 댐에 모았다가 정수장을 거쳐 일반 가정에 공급되니 결국은 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래서 땅과 물은 하나다. 이래도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틀린 것일까. 꼭 밭이나 논, 또는 화분이나 마당이 있어야 흙을 밟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흙은 땅과 하늘의 표면이자 피부다. 자연의 모든 생물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 품 같은 존재다.

새와 나무, 꽃 등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생명체들도 그러하거니와 호수나 강, 바다를 담고 있는 거대한 그릇도 결국은 흙이다. 필자가 경북 문경의 새재를 넘던 날이 있었다. 밤길에 훤한 달빛은 길 옆으로 흐르는 실개천의 물소리와 논두렁에 개구리울음, 그리고 숲속의 정겨운 여치 소리가 삼중주를 연주함으로써 더욱 운치가 넘쳤다.

길 바닥은 황톳길이었는데 맨발로 걷는 동안 그 느낌이란 마치 흙에서 솟아나는 미네랄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할 신선한 흙냄새는 짙은 녹음에서 풍겨 나오는 잎새들의 향기와는 또 달랐다.

이따금 반딧불이 길을 안내하지만, 누런색 황토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에 더 매료되어 걷다가 멈춤을 반복하게 된다. 이쯤하고 사람이 부모의 육체적 결합으로 생겨났음에도 왜 흙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부의 정자도 뭔가를 먹어야 건강하게 생성될 수 있으며 모의 난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먹었던 모든 식량들이 흙에서 생긴 것이니 어찌 부모가 낳은 아이가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흙에서 빚어진 게 아닐까.

물론 죽은 뒤에도 장례 절차를 거쳐 자연에 뿌려지거나 매장을 하더라도 흙에 맡겨야 하니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미생물들이 작용하여 깨끗하게 분해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썩지도 못한 1,000억 명의 사람 시신과 동·식물 잔해는 어찌 될 것인가.

당연한 것이 사실 깊이 생각하면 고마운 것이다. 흙이 살아야 미생물도 지렁이도 사람도 산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토양은 산성화되어 버렸고 특수 농법을 하는 농가도 질소 과다로 인해 흙은 제 성분을 잃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모든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 벌레가 먹은 것이나 상처가 생긴 과일은 상품 가치를 잃어버리고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니 당연히 농약을 써야 하는 것이며 그 생산물의 근본인 흙은 산성화의 길을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다.

벌레도 못 먹는 것을 인간이 먹어야 하는 현상, 야채나 과일을 눈으로 먹는 건 아닐진대 친환경이 어쩌고 유기농법이 저쩌고 하며 인간의 허영심에 키를 맞춘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가 다시 감내해야 하며 화학비료에 의한 비료와 염류, 농약, 제초제, 농업 화합물에 의한 환경오염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비료 및 농약의 과용이다. 통계에 의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농약의 사용량은 늘어나야 작물이 버틸 수 있다. 한국은 과거 인분이나 가축분뇨에 의지하다가 현재는 농약의존도가 높아서 OECD국가 중 1위인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성분으로 보자면 질산태질소가 과잉 축적된 작물은 보통 배추보다는 깻잎이나 상추처럼 짙은 색의 작물에 질산염의 농도가 높게 검출되는 것으로도 이 사실은 증명된다. 이는 체내에서 아질산염으로 변화하여 혈중에 투입이 되면 산소와 탄산가스의 교환을 저해하는 메트헤모글로빈 혈증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토양에 뿌려진 농약은 빗물을 타고 강이나 바다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물고기의 번식력을 저하하고 기형 발생률을 높이는데 먹이사슬에 의해 이런 물고기를 먹었을 경우 인간에게 잔류 농약이 흡수되는 등의 악영향이 뒤따를 수 있다.

사람들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흙수저라 한다. 이 밖에 수저 계급론을 보면 자산 20억 원 이상의 금수저, 자산 5억 원 이상의 은수저, 동수저, 자산 5,000만원 이하의 흙수저 등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독자들은 어디에 속하고 있는가.

1억 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라면 금수저에 포함되지 않을까. 이제 흙은 가난의 대명사가 아니다. 지금은 몰라도 2045년 이후에는 고층건물보다 농약성분이 없는 자연속의 농토가 더욱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손꼽힐 날이 올 것이다.

이미 집집마다 베란다며 계단마다 녹색 작물을 인테리어로 화분에 심어놓고 그나마 흙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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