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다시 새겨야 할 민주의거
[덕암칼럼] 다시 새겨야 할 민주의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3.15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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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자유가 넘친다. 아예 방종을 넘어 무질서에 이를 만큼 윤리도 상식도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필자만의 견해일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 국론은 양분되고 저출산에 실업대란은 수습이 불가할 만큼 난무한다.

이러라고 목숨 걸고 대한민국의 구국에 젊은 피를 수혈했던가. 1960년 3월 8일, 지금으로부터 63년 전 이날은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법·부정선거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의 날이었다.

이날은 4·19혁명을 이끈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으며 지난 2018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날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였으며 불법적 인권유린도 성행했던 시절이었다.

대전지역 고등학생 1,000명이 시민들의 환호속에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던 날이며 최근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울 광화문을 메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대전고, 대전상고, 대전공고, 보문고 등 4개 학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100명도 넘는 학생들이 구속됐다. 군인들의 개머리판으로 인한 폭행이 난무했던가 하면 경찰의 곤봉 세례속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역사는 그렇게 피로 얼룩진 희생을 치르면서 조금씩 민주화를 향해 걸음마를 옮긴 것이며 지금 누리는 자유는 참으로 값진 호강이다. 팔순의 노년이 된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은 이제 빛바랜 낡은 역사에 국한될지라도 우리 후손들이 감사하고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애써 얻은 자유는 박정희 前 대통령의 오랜 독재 속에 경제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공이 남았고 이후 다시 총칼에 의해 군인의 정치권 진입으로 남산의 서빙고 분실이나 공안정국의 칼바람은 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희생을 전제로 성장했던가.

최루탄 가스가 매캐한 대학캠퍼스의 교정에는 시대만 바뀌었지 여전히 곤봉세례와 군홧발에 구타가 만연했다. 말보다 폭력이 더 빠르고 통치의 수단이었던 시절, 민주화의 열망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부정선거와 군부독재라서 그렇다 치자. 지금은 어째서 이 난리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골목길을 빗자루로 쓸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몸으로 움직이며 생산 활동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며 지금처럼 의료시설이 많은 것도 아닌데 중병이 아닌 다음에야 환자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언제부터 침대 쓰고 양변기 화장실 사용했으며 싱크대에 고층건물에 살았던가. 물론 시대적 발전은 문명의 혜택이며 당연한 것이지만 서양에서 검증되지 못 하고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벌어진 한국인들 고유의 가치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그 실종의 이면에 성숙한 자유가 자리잡기도 전에 방만한 나태로 이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수습이 안 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되면서 한때 국가부흥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시기의 젊은이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폐지를 줍기에도 빠듯한 삶을 살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몇몇 정치인들이 망쳐 놓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특정인을 우상화 시켜놓은 몇몇 정치인들, 지역감정을 조장해 대대손손 민주화라는 가면을 쓰고 진정한 민주열사를 제쳐놓은 채 온갖 명분으로 국가 예산을 무한정 편성하여 그들만의 성지로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희생되어야 하는 계층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그러하다.

특정인의 지적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에는 너무나 탄탄하게 굳어버린 민주화의 퇴색은 오늘같이 스산한 찬바람처럼 우리 민족의 모든 순수함에 한기를 느끼게 한다. 너무 멀리 왔다.

다시 돌이키기에는 진정한 민주화가 무엇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특정 세력의 기반은 탄탄해졌다. 어쩌다 우파·좌파로 구분되고 보수와 진보가 마치 흑백논리로 대립하는 구조가 되었을까.

자신의 의견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주는 배려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는 독선과 아집의 시대가 됐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실은 무엇이며 광주민주화에 대한 성역화와 예산편성을 밝히라는 일부 여당의 의견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역사는 흐른다. 적어도 수 십 년 처박아 놓았다가 당사자가 백골이 된 다음에야 겨우 밝혀지는 민주화의 공로가 무슨 소용일까. 필자는 티끌만한 존재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모든 날들을 기록만 할 뿐이다.

어쩌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겨우 턱걸이하는 중대한 시기에 많은 국민들의 근로의욕과 삶에 대한 열정, 꿈과 희망이 실종되었는지도 적을 뿐이다. 해결책도 제시하며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모든 염려를 기록만 할 뿐이다.

마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 언젠가는 지금의 방종과 양분된 국론과 무너진 윤리가 바로 설지 알 수 없으나 영원한 내리막은 없는 것이다. 그 과도기가 내란이든 질병이든 외세에 의한 전쟁이든 거쳐야 할 것이고 지금처럼 곪아서는 스스로 해결될 기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 사람뿐이랴. 소금이 염기를 잃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습한 곳이면 어디든 곰팡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사회가 지도층의 부패로 신선함이 실종되면 아부하는 부류와 공생하는 몇몇은 살만하겠지만 절대다수의 경제적·정신적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23년 지금의 현실을 누가 감히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있는 국민이라면 이것은 아니다 싶을 만큼 상식과 질서와 배려가 실종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어디에도 앙보라곤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으며 세금으로 편성된 각종 예산은 눈먼 돈이 되어 먼저 먹는 게 임자인 나라가 되었을까.

63년 전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치렀던 당시의 고등학생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며칠 전에 전국적으로 제3회 조합장선거가 치러졌다. 이 또한 권력층으로 구분되는데 금융에도 민주화가 필요했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조합장의 직권남용과 부패소식이 자유에 대한 조절이 필요함을 알게 했다. 부패는 개인의 이익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즉, 조합원의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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