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덕암칼럼]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3.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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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다소 지난 감이 있지만 지난 15일은 ‘상공인의 날’이었다. 3·15 의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상공인의 날이 밀려난 것이다. 특히 올해는 상공의 날 5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이기도 했다.

필자는 해마다 이날이면 상인 일기를 인용하여 상공인들의 애환과 직업적 사명감을 표현한 바 있다. 당초 상공인의 날은 1973년 3월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매년 3월 셋째 수요일로 정한 날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발명의 날, 전기의 날, 계량의 날을 모두 합쳐 상공의 날로 통합된 것이다. 50주년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3일부터 일주일간 다양한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를 빛낸 상공인 220여 명에게 정부 표창을 수여하고 일반인을 위한 50자 백일장이나 빌딩 숲 음악회 등을 개최했다. 독자들은 아실지 모르지만, 최근 상공회의소가 공언한 3E란 신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ESG·엑스포 (EXPO)를 말한다.

부산엑스포가 인류 문제에 대해 전 세계인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상공인의 날 국가가 진행하는 일회성 행사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도록 재래식 시장 한쪽에서 봄나물을 파는 노점상도 상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규모나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상을 주고 받는 행사를 보면서 정작 뭔가를 만들고 이를 파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상공인에 해당되는데 어째 상징적인 인물과 국민세금으로 걷은 예산으로 돈 잔치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럼 상공인의 날 무엇을 해야 맞는 것인지 되짚어보자. 어제 덕암 칼럼을 통해 가봉과 현상의 미래에서도 어필했듯 하루에도 사라지는 직종이 수 십 가지에 이르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느 계층이 가장 큰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며 거침없는 파도에 부딪혔던가.

필자는 망설임 없이 상공인들이라고 말한다. 당초 1차 산업인 농업, 어업, 광업, 임업은 자연을 배경으로 열심히만 하면 소정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직종이었다. 물론 자연재해로부터 간혹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밥술이나 먹을 수 있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명 방물장수라는 보따리 상인들이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안방 마님을 상대로 유통업에 종사하던 과거가 있었다. 말이 보부상이지 상인들이 평소 장사를 하며 돌아다니면 온갖 정보를 다 듣게 되고 이런 정보들이 물건을 팔고 사는 과정에서 구전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니 이만한 정보원이 어디 있을까.

장신구, 미용에 필요한 각종 소품들, 건강에 좋다는 만병통치약까지 상공인의 날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흔적은 언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제조로부터 출발한다. 그 다음 과정이 유통이고 유통에는 홍보가 필요했으며 시장마다 처음 팔면 ‘마수’ 파는 과정에서 내키면 더 주는 것이 ‘덤’이고, 막판에 대충 팔고 판을 접으려면 ‘떨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시대만 변했지 편의점 가서 1+1, 2+1 등이 덤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대형마트에서 영업 마감시간이 되면 생선이나 기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농산품들의 가격이 반값으로 떨어진다. 물론 이것을 보고 떨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는 사람이 싸게 사려고만 욕심내면 파는 사람은 당연히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농·축·수산물, 공산품이든 만든 사람을 제조라고 한다면 파는 사람은 유통이라고 한다.

상공인이 제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유통과정이 허술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데 산지 배춧값이 1,000원도 안 될 때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에 가보면 5,000원으로 뛰어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고 어부가 애써 잡은 물고기를 경매시장에서 가격을 후려친다면 기름값도 못 건진다며 조업을 포기할 것이다.

유통은 나름 소정의 경로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수매를 돕는 순기능이 있는데 간혹 지자체에서 선심성 생색을 내며 로컬푸드라는 영어로 포장한 농산물 직거래가 그러하다. 유통 과정의 기능과 역할을 거품으로 내몰아 그 가치를 무산시킬 때 얼핏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위하는 것 같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기존의 룰은 아예 무시하는 처사다.

이 세상에 모든 영역에는 고유의 역할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타 넘어 나댄다면 기존의 상인들은 폭리를 취하는 악덕업자로 치부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창업하고 폐업하는 자영업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는 책상머리에 앉아 잔머리만 굴리며 표를 얻기 위한 생색작업에 몰두할 게 아니라 상인들의 영역과 시장은 각자의 밥그릇으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4일 인천 현대시장에서 발생한 방화로 인해 점포 55곳이 잿더미로 변했다.

뉴스를 보면 사람들은 스치는 한 장면일지 모르나 당사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낭패다. 돈이 많았다면 좌판을 벌이고 “사세요”라며 고객들의 구매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상공인의 날, 어려운 상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모금운동이나 정부 차원의 긴급 재난지역선포 등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더 공감대를 얻지 않을까.

옛말에 해도 되는 3대 거짓말이 있는데,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것과 노인이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하는 것과 장사치가 밑지고 판다는 것이다. 폭리를 취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싸게 사려는 욕심은 파는 사람들의 이익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간혹 점포정리, 공장도가격, 스크래치 가구 등 정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유통과정도 있지만 누군가의 손해가 내게는 이득으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그리 달갑게만 여길 일은 아니다.

거래나 흥정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가 존재하는 곳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장이 서게 마련이고 분야에 따른 유통과정이 있다. 무조건 싸게만 사려는 구매자의 노력과 어떻게든 이익을 남기려는 판매자의 영업 전략이 충돌한다면 사회는 난장판이 될 것이고 어느 정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룰이 존중된다면 시장판이 되는 것이다.

상공인의 날 50주년을 맞이하여 상인 일기의 한 대목을 읊조려 본다. “해가 없는 날에도 점포 문은 열려 있어야 하고 별이 없는 날에도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워야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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