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새로운 내용이 있는 글, 신문
[덕암칼럼] 새로운 내용이 있는 글, 신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4.10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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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은 필자의 입장에서 생일이나 다름없는 날이다. 신문에 미쳤다가 눈을 다시 뜨니 58세 라는 나이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신문에 대한 동경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공직사회의 부패를 방지하고 진실을 찾아다니는 일이야 말로 영웅심도 자부심도 넘쳐났기 때문인데 한 해씩 시간이 갈수록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며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진취적인 글을 쓰더라도 편집부에서 중단되고 더 올라가도 사주의 뜻이나 회사 방침에 안 맞으면 또 걸러진다. 아마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한 사정은 별반 다를 리 없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유인즉, 회사는 기자들 급여에 편집비, 인쇄비, 배송 비에 지역에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배달비, 각종 세금에임대건물인 경우 임대료, 이것저것 협회비에 정의 구현을 위해 기사를 써도 요즘 사회가 각박하고 언론에 대한 편견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언론중재위원회에 걸고 그나마도 시원찮으면 민사소송에 형사소송까지 건다.

문제는 그렇게 애써서 신문을 발행해도 발달된 인터넷에 밀려 독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결국에는 관공서에서도 신문사 길들이기 방침을 만들어 티 안 나는 갑의 자리에 올랐다.

포털 사이트는 신문사에서 어렵게 돈 들이고 공들여 만든 뉴스를 사 가도 시원찮은 판에 신문사들이 알아서 무릎 조아리며 뉴스를 메인에 걸기 위한 포털 고시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것이 신문의 현주소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사주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철학과 사명감이 동반된지라 쉽게 손을 놓지 못한다. 신문이 언제부터 이런 위치로 추락했을까 돌이켜보면 ‘신문의 날’은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이자 근대적 민간지인 독립신문 창간 일을 기려 정해진 날로 매년 4월 7일이다.

1957년 한국 신문편집인협회가 결성되고 이후 ‘독립신문’ 창간 61주년을 기하여 신문의 날로 제정된 것이다. 이후 신문은 한국의 근대사에 모든 기록을 남기면서 국민들의 건전한 여론형성에 일조해 온 바 있다. 특히 군사정권시절에는 서슬 퍼런 군홧발에도 할 말은 하는 정론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필자 또한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던 1988년 태백지국을 맡아 국민주주로 형성된 신문고가 생기는 줄 알았다. 당시 주식 매입과 험한 탄광촌을 오토바이로 배달하던 한겨레 신문이 훗날 1998년 지방일간지 진출에 계기였다.

모든 기자들이 다 같지 않고 모든 신문사들의 경영구조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신참이었던 1998년 시절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지울 수도 없었고 필름 현상을 하고 본사로 달려가야 게재가 가능했다.

노트북도 없던 시절 원고지에 기사를 작성하는 당시 상황에서도 정론직필의 의지는 다음날 신문으로 발행되던 날들이었다. 신문의 날이면 경찰이나 시청에서 식사도 준비하고 나름 잔칫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사실 신문의 날 주인공은 기자만의 날은 아니다.

본사부터 지사와 기자, 편집, 사진부터 독자의 손에 신문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수고한 모두의 날이어야 한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밀려 신문의 존재가치가 갈수록 희미해졌지만 신문의 고유기능인 여론조성과 새로운 정보, 사실에 근거한 공직사회의 부패 방지 역할은 그 어떤 SNS도 대신하지 못한다.

신문 발행에는 많은 단계와 어려움이 있음에도 그런 신문을 요즘 누가 보느냐며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제 유료독자가 있어야 운영되는 게 맞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자전거 선물에 1년을 무료라며 선전을 하던 과정이 있었고 신문은 자장면 덮개나 설렁탕 그릇 싸는 정도의 소용가치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 지방일간지나 중앙지까지 모든 관공서의 출입문에 뿌려진 신문들이 들춰보지도 않은 채 저녁이면 고스란히 폐지로 거둬지는 게 현실이다. 이 불편하고 공공연한 비밀과 진실에 많은 신문사들이 조용히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도 신문이 공직사회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빈 총이라도 보초를 서면 탈옥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만약 신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선이 썩지 않는 것은 소금의 염기가 있어서인데 소금기가 없는 설탕을 뿌렸다면 어떻게 될까.

지자체에서 단체장 홍보 내용의 보도자료로 온 지면을 채운다 치자. 그것은 설탕으로 도배질한 지면이기에 누구 하나 감히 소금을 뿌리는 자가 없으면 단체장은 자신의 선정 덕분에 지방자치가 잘 되는 줄 착각하며 점차 안하무인의 정책으로 내달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언론의 부실한 기능과 역할이 생선의 부패를 방조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그 폐해를 세금 낸 시민들이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신문의 날 신문이 제몫을 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되짚어 본다.

가령 고객이 짜고 매운 것을 원한다면 주방장은 소금과 고추를 더 뿌릴 것이며 그 반대라면 설탕이나 조미료를 더 넣을 것이다. 독자들이 재미있고 자극적인 유튜브에 빠져 신문을 외면한다면 신문이 해오던 정화 역할은 점차 그 빛을 잃을 것이고 그 피해가 결국 소비자인 시민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신문은 언론매체의 일부다. 방송, 라디오, 잡지 등 다양한 언론보도 방법이 있지만 신문처럼 고된 일도 드물다. 점차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신문, 하지만 소신과 철학을 갖고 꾸준히 신문을 발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흥미보다는 가치 중심의 견해로 신문을 챙기는 독자들이 있어야 신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갈수록 어려운 길을 걷는 신문의 모든 종사자들이 신문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독자들의 관심과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고로 필자는 ‘언문의 날’ 제정의 취지를 추진한다. 말과 글의 소중함을 알리고 말 한 마디의 조심성과 가치, 글 한 줄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 효과, 말과 글을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다.

말과 글이 뜻을 잃으면 소리와 낙서로 그친다. 반대로 뜻을 더하면 사회가 따뜻하고 후손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된다. 그러한 의지로 덕암 칼럼을 작성한다. 후손들에게 참고서가 될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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