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역사적 진실은 일관되어야
[덕암칼럼] 역사적 진실은 일관되어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4.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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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역사적 진실은 한결같아야 하는 것이지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필자 또한 각종 통계와 시대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괄목할만한 사건들을 정리하면 같은 사건인데도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주 4·3사건, 5·18민주화운동, 깡패를 정리한다던 삼청교육대, 부랑아를 수용하여 관리한다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안산의 선감도 사건, 이 밖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모든 대형사건은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필자가 직접 취재한 것도 있지만 이미 인터넷상에 올려진 사건들을 검색하면 한결같이 나타나는 역사적 범죄와 그 같은 행태가 진행되도록 방관하거나 동조한 권력이 있었다. 누군가 뒤를 봐주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살아 생전 진상규명위원회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보상을 받거나 죽어서라도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가족들이라도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희생된 사람들 중에 민주화를 외치다 희생된 사건 중 하나가 4·19 혁명이다.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민주주의 욕구가 높아졌다. 위기를 느낀 이승만 정권은 부정·관권선거를 감행했고 이는 범국민적인 독재 정권 타도 항쟁을 촉발시켰으며 촉매제로 4월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왔다.

호강은커녕 겨우 입에 풀칠할 즈음 민주주의를 향한 4월 혁명의 정신은 196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될 시대에도 여전히 희생양은 언제 어느 때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

1953년 6·25전쟁이 종식됐고 휴전 협정이 조인됐으나 1956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자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일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4·19의 도화선, 12년간 이어진 이승만의 장기 독재 체제는 거듭된 실정으로 민심을 이반시켰고 자립 기반이 취약한 경제는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산업 침체와 실업률 상승을 불러왔다.

여기에 미국이 한국을 직접 원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과 일본의 지역 통합 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의 경제 원조도 감소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58년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겪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원조로 지금의 남한보다 더 살기가 좋은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개악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무리하게 바꾸는가 하면 비판적인 논조의 언론사를 폐간하는 등 독재 정권의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은 비교도 안될 만큼 살벌했다.

요즘도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선거 전인 1959년 11월부터 이승만 정권은 각 지역의 시장과 군수들에게 미리 사표를 받고 불법 선거운동을 강요했으며 선거 중에는 40% 사전 투표, 3인조, 5인조, 9인조에 의한 반공개 투표, 유령 유권자 조작과 기권 강요, 야당 참관인 매수와 테러,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지금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자들 5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1959년 당시에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으로 이승만의 4선 연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유사한 점이 있다. 2023년 봄, 한국에는 북한의 미사일이 시도때도 없이 날아오지만 당시 전쟁을 전후해 반공과 독재에 억눌려 있던 민심도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지금과 매우 유사한 상황을 짚어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과정에서 얻어낸 게 없다며 항의하는 것과 이승만 정권의 행태에 대해 경남 마산을 비롯해 대구와 부산, 서울 등 대도시 곳곳에서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항의 시위가 벌어진 점도 유사하다.

선거 당일 경남 마산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는 과정에서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4월 11일 최루탄을 맞고 숨진 고교생 김주열 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1959년 마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더욱 거세지자 이승만은 마산 사건의 배후에 공산 세력이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사건을 수습하려 했다. 여기서 또 유사한 점이 드러난다. 2023년 북한의 명령을 받은 세력이 최근 노동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검찰의 조사가 발표된 것이다.

그러던 중 4월 18일 이승만 정권이 동원한 정치 깡패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인뒤 학교로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들을 구타해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잘못 건드린 것이다.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은 ‘4·18 선언문’을 통해 마산 사건 책임자에 대한 즉시 처벌과 경찰의 학원 출입 엄금, 기성세대 각성, 평화적 시위 보장 등을 촉구했다. 4월 19일 고려대생 피습 사건에 자극을 받은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면서 항쟁은 절정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고등학생과 시민들의 합세로 순식간에 2만여 명으로 늘어 서울 광화문 주변을 가득 메웠다. 요즘 광화문을 메우는 군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다만 공통점은 대통령 물러가라는 것이다.

어째 1959년과 64년이 지난 2023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유사한 고통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누가 희생되어야 하며 해결점은 없는 것일까. 4·19혁명은 186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6026명이나 됐다.

하지만 4월 25일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27개 대학교수 25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평화시위를 벌였다.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12년간에 걸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2023년 유사한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 어쩔 것인가. 제2의 이승만이 탄생할 것인지 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시대가 어수선하다고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 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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