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까마귀와 봉황새
[덕암칼럼] 까마귀와 봉황새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5.2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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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숲속의 새들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온갖 조류들이 저마다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을 때 흉조로 알려진 까마귀가 슬그머니 상황을 살피고 있었는데 비슷한 까치가 자신은 길조라며 날개에 힘을 주고 나타나니 은근히 샘도 나고 부럽기도 했다.

새들 중에는 귀여운 참새는 물론 나름 우아함을 자랑하는 두루미와 학이 가느다란 다리에 흰색 날개를 활짝 펴며 고고함을 자랑한다. 어디 그 뿐일까. 힘이 센 솔개와 독수리는 물론 용맹하기로 소문난 보라매도 빠지지 않는다.

이쯤 되자 깜냥도 안 되는 까마귀가 잔머리를 굴린 끝에 이 새 저 새 깃털을 모아 치장을 한 후 으스대며 나타나 “여러 새들 가운데 제가 새들의 왕이 되어 들짐승이나 인간들로부터 여러 새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새가 되어 보겠다.”며 큰소리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 멸종된 람포링쿠스 공룡 날개 끄트머리와 공작새가 빠트린 날개까지 모두 자신의 날개인 것처럼 연관시키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모든 새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가하고 듣고 있을 때 마침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에 코가 간지럽던 까마귀가 연신 재채기를 하니 겨우 붙어있던 날개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한눈에 보기에도 흉한 까마귀의 군데군데 남은 깃털들이 흉측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던 봉황이 한마디 한다.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창세기 8장 6절과 7절에서 보듯 구약성서에서는 까마귀가 지혜로운 새로 여겼기 때문에 노아는 물이 줄어든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새들 중에서 가장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까마귀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래야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작 자신만이 갖고 있는 지혜라는 소중한 것을 모르고 온갖 잡새들의 날개로 장식하는 까마귀를 타일렀다고 한다.

사람도 이와 같다. 필자는 1998년부터 총선거와 지방선거를 8차례씩 총 16번의 선거를 집중 취재 보도한 바 있다. 당락에 따른 희비교차도 지켜보았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당선직후 감동의 각오를 보인 사람들도 한 두 달 지나면 이내 같은 물(?)을 먹은 탓인지 딴사람이 되어 다음 선거때까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오늘 필자가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까마귀에 대한 경고이자 조언이다. 최근 누구라고 하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될까 실명을 거론할 수 없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자신을 연결하여 마치 광주의 희생양인 것처럼 비추고 민주화의 열사와 동급인 것처럼 미화시키는 인물들을 속속 볼 수 있다.

출생연월일을 계산해 보면 1980년 당시 초·중학교 재학 중이거나 잘해야 고등학교 다녔을 학생임에도 민주화를 빙자한 문구들과 현수막을 부여잡고 방송국 카메라앵글에 잡히려 온갖 폼을 다 잡는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해마다 5월 18일이면 광주로 갔다가 5월 23일이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가서 故 노무현 前 대통령과 프레임을 맞춘다.

당시 노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 때 뭐하다가 지금와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니 한 표라도 얻을 심산인지 노무현 정신, 노무현 철학과 노무현 前 대통령이 남긴 명언에 자신의 어투를 뒤섞어 국민들, 아니 유권자들로 하여금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 얼마나 유치한 인간 까마귀인가. 비단 더불어민주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前 대통령이 구속되었을 때 그들의 그늘아래 관료를 지냈거나 공천을 받았거나 때로는 특혜를 받고 살았던 사람들의 자세를 보면 얼마나 비열하고 소신 없는 자세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한때 박근혜의 아들 ‘홍길동’, ‘김철수’라며 선거 후보자로서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다가 어느 날 구속발표가 나자 거실에 걸어놓았던 대통령 상과 특정단체 임명장을 슬그머니 내려서 안 보이는 곳에 감춘다.

이 또한 남의 이름이나 영광에 자신을 덧칠하는 가짜 날개 덧붙이기와 뭐가 다를까. 무릇 사람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소신, 주관, 그것에 뜻을 더하는 철학이나 절개가 있어야 한다.

권력의 줄 서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리고 필요한건 과감히 권할 수 있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 것이 측근이지 눈치 봐가며 잔머리만 굴리는 게 무슨 인간의 존재감을 높이는 일일까.

필자는 권한다. 그리고 말린다. 남의 치적이나 위상에 자신을 덧붙여 거짓 날개를 달지 않도록 말린다. 그리고 권하는 건 이 세상 누구든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으니 그걸 살리고 자기계발하여 세상의 득이 되고 빛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권한다.

사람은 지조나 줏대와 소신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정신을 살려 주관과 중심을 잡은 삶을 영위하여 개인적으로는 자존감을 살리고 사회적으로는 존재감과 영향력을 키워 단순히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물학적 존재에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되 뜻과 철학은 5월의 장미보다 더 붉은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자는 절개를 지키고 남자는 아량과 배려를 충만히 갖춤으로써 까마귀에게 지혜가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색깔이 분명하니 각자의 소질을 잘 살려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더도 덜도 말고 자기다워야 한다. 천태만상 모두 다른 삶이 각자다운 것은 어떤 식으로든 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판단 속에 한순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깜냥도 안 되는 인물들이 감각과 지식이나 철학도 없이 정치권에 진입하면 사회에 불행이고 낙선하면 개인에게 불행이다.

결론적으로 상관도 없는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변화의 정점에 특정인을 연결시켜 판단의 오류를 가져오는 것은 형사법은 아닐지라도 도덕적 사기에 가까운 범죄다. 대안이라면 현명한 유권자들이 이를 구분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총선이 날짜상 11개월 남았지만 사실상 공천이 절반이라면 불과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혹여 다른 새들의 날개를 갖다 붙이는 까마귀와 지혜가 넘치는 까마귀를 구분해 내는 것이 우선이며 그런 관심과 정성을 더해질 때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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