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공교육의 대안은 없을까
[덕암칼럼] 공교육의 대안은 없을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6.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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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탁 탁! 탁! 여름 하복 교복을 입고 적게는 5대 간혹 20대까지 막대걸레봉으로 매를 맞던 시절이 있었다.

손은 칠판을 짚고 한 대씩 맞을 때마다 허벅지를 매만지며 통증에 아파하던 시절,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던 선생님들의 엄벌은 ‘사랑의 매라’는 명분으로 묵인되던 시절이었다.

여학생은 책상 위에 꿇어앉아 30cm 잣대를 세워서 손등을 내리치는 살벌한 단체 기합에 휩쓸려 맞아야 했고 무릎 위로 찰싹거리는 소리도 당연한 듯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학생들은 일방적인 분풀이 대상이 됐던 시절이 불과 40년 전 이었다. 간혹 위대한 선생님이 집에서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당일 숙제를 안 한 학생은 제대로 걸린 먹잇감이었다.

지각하면 운동장 오리걸음은 물론이고 교복에 배지 하나라도 안 달고 등교한 학생들은 지도부 선배들의 표적이었으며 선생님 눈에 벗어난 학생은 수업시간일지라도 복도에 꿇어앉아 수업시간 끝날때까지 손을 들고 기다려야 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출생률이 줄어들어 한집에 5남매·7남매 하던 것이 둘도 많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책에 의해 자식이 상전이 되자 학생인권조례가 생겨났고 학부모들은 내 자식 잘 챙겨 주는 정치인을 향해 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대안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생겨났고 학교에는 학원폭력위원회가 등장했다. 기존에 학생들은 서로 멱살 잡고 싸우다 코피가 나도 운동장 수돗가에서 화해하고 서로 우정을 다지던 날들이 있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여차하면 신고하고 누군가는 가해자로 남아 한평생 돌이킬 수 없는 생활기록부의 기록으로 남는 상황에 직면했다. 훗날 세월이 흘러 십 수년이 지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더라도 발목을 잡는 단서가 되고 말았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체벌이나 폭력에 방치 되었던 학생들에게 청신호였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적잖은 선생님들이 학원폭력의 전성시대에서 물러나자 학생들은 여차하면 동영상으로 고발이 난무하는 상황에 직면했으며 그러한 분위기가 점차 자리를 잡아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선생님들의 지엄한 위치는 교사라는 직책으로 과외나 학원 강사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직면했으며 공교육의 사기는 급격히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모든 게 인과응보다. 제정된 법안 이전에 공포의 주인공이었던 선생님들의 전성시대가 낳은 시대적 변화의 산물들이 지금의 교사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은 그 흔한 선물이나 꽃 한 송이도 뇌물로 취급되어 주는 학생이나 받는 선생님이나 둘 다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으며 교사가 되고도 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하나 둘씩 교단을 떠나는 이들이 급증했다.

단순한 교권 추락을 넘어 과중한 업무는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이나 긍지를 세우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1년간 근속 연수 5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는 교사는 589명에 달했는데 작년에 303명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기간제 교사의 경우 대놓고 무시하는 학생들의 언행이 교사의 사기를 죽이는데 한몫 했으며 사소한 훈계에도 학원폭력이나 언어폭행으로 신고 되어 불안감을 더했다.

예를 들어 교총이 공식 발표한 교권활동 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교권 침해로 접수된 상담 건수는 520건으로 2016년 이후 가장 많았으며 이 중 241건이 학부모에 의한 것이었다. 일부 학부모는 나이 어린 교사에게 반말을 하거나 심지어 욕설까지 서슴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민원에 민감해 질 수 밖에 없고 괜히 학생들 잘 가르친답시고 나서봐야 좋을 일 없는 만큼 보신주의 교육이 자리 잡게 됐다. 뒤늦게 국회에서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 과정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정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안을 입법화 할 때 무조건 금지조항만 있었지 이에 대한 대안은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당연히 자유에 대한 허술한 법안이 방종을 불러일으켰으며 사제 간의 온정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는 본래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 선생님의 교육방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결과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갈수록 학생들의 자기주장이 교권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교육관계자들은 현실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 고정된 교사 충원,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한 명을 두고 사교육시장, 급식, 관리, 문구, 교재, 시설, 납품업체, 방과후 수업까지 온갖 분야에서 수익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막대한 국가예산을 나눠먹고 있는 현실.

그렇다고 국가별 대학의 경쟁순위를 보면 교육의 질이 높아지거나 뚜렷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선생님들의 엄격한 교육 분위기에서도 나름 노력해가며 성공한 CEO나 인재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학생들을 싸잡아 저평가 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교육의 질적 향상이나 선진국형 교육방침도 없이 입시위주의 교육, 유명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나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인재양성이 가능해질지 의문이다.

필자 또한 수 많은 학교들을 대상으로 릴레이 특별취재도 해보고 학생기자단도 수 많이 배출해 보았으며 특강도 나서 보았지만 12년 동안 죽어라 공부에만 열중했던 학생들이 수능에 목매어 노력해도 자신만의 장점을 살릴 여건이나 기회보다는 오로지 좋은 대학, 취업, 그리고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한 나라의 미래는 자라나는 학생들 각자의 가치관이나 인륜을 염두에 둔 도덕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필자의 다양한 경험에 의하면 모든 국력과 그 민족의 미래가치는 효도에 기초되어야 하며 훗날 국가 간 경쟁력의 잣대 또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데 근본을 두어야 한다.

얼핏 보면 무관한 일 같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야 가정이 바로서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바로 선다. 국방이나 경제력으로 환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 가치는 인륜을 바로 세우는 것이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권위도 중요하고 그것이 형법·민법보다 상위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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