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박상재 작가의 동화로 부활한 “영웅 레클리스”
[책소개]박상재 작가의 동화로 부활한 “영웅 레클리스”
  • 권영창 기자 k-economy@naver.com
  • 승인 2023.06.0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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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있는 레클리스 동상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있는 레클리스 동상

[경인매일=권영창기자]제 이름은 ‘레클리스’, 원래의 이름은 한국말로 '아침해'였어요. 몸무게 400㎏ 정도의 제주도 산 암말이지요. 1948년 태어났으니 지금까지 살았다면 75세가 되었겠네요. 20세가 되던 해 눈을 감고 지금은 미국 버지니아주 관티코 해병대 본부에 실물 크기의 동상으로 서 있어요.

2016년에는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구 역사공원에도 제 동상이 세워졌답니다. 또한 2018년 5월에는 미국의 말의 도시인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도 제 동상이 우뚝 서있게 되었어요. 1973년 3대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세크리테리엇’, 1920년대에 활약한 최고의 경주마 ‘맨오워’ 등 전설적인 경주마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지요. 

전 원래 서울 신설동 경마장을 달리던 경주마였습니다. 그런데 두 살이 되던 무렵, 6·25전쟁이 터졌어요.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저도 한 마부에게 팔려갔지요. 전쟁통에 마차를 끌며 이리저리 다니던 어느 날 한 미군 해병대 장교의 눈에 띄었고 단돈 250달러에 팔려갔지요.

이때부터 제 두 번째의 삶이 시작됩니다.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 소속이었던 저는 군량품 수송마 역할을 맡았어요. 비상한 기억력 덕분에 한번 안내받은 길은 모조리 암기할 수 있었고, 동료 병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죠. 중공군과 미군이 격전을 치른 연천군 '네바다 전투'에서는 저 혼자 보급기지와 최전방을 하루 51회나 왕복하며 탄약과 포탄 수백t을 실어 날랐어요. 병사들은 행여 제가 다칠까 봐 자신이 입고 있던 방탄조끼를 벗어줄 정도였지요. 이 무렵 이름도 영어 이름인 '레클리스'(무모한)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저는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덕분에 미 해병대 최초로 동물에게 수여한 하사 계급장도 받았어요. 동료들은 제게 성대한 전역식도 치러줬지요. 미국 대통령의 표창장, 훈장 등 큰 상도 많이 받았어요. 유명 잡지인 라이프매거진에서 저를 '세계 100대 영웅' 중 하나로 꼽기도 했죠. 조지 워싱턴, 링컨 대통령, 테레사 수녀 등이 수상 동기이니 제가 얼마나 큰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눈을 감는 그 날까지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서울 경주마 시절 제게 '아침해'라는 이름을 지어 보살펴주던 김영길 아저씨예요. 아저씨는 저와 함께 헬싱키 올림픽에 나가 승마 부문 금메달을 따내는 게 꿈이셨어요.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침해! 널 보면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희망이 넘쳐. 넌 언제나 나에게 기쁨을 주지."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아저씨도 군인으로 입대해야 했고, 한 번의 이별은 영원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렇게 용감하게 전장을 누빌 수 있었던 것도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을 거예요.

미국인들은 저를 전쟁영웅으로 칭송했지만, 제게 단 한 사람의 영웅은 영길 아저씨뿐이예요. 동상 제막식 때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미국까지 날아와 눈물짓던 아저씨를 저는 하늘나라에서 지켜보아야 했지요. 그리운 영길 아저씨!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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