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덕암칼럼]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4.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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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인근 해상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4월 16일 오전 10시경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예정이던 여객선 세월호.

아직까지 침몰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사고는 총 탑승 인원 476명 중 사망 299명, 실종 5명, 구조 172명이라는 산술적 숫자만 남긴 채 10년을 맞이했다.

세월호의 진실은 무엇이며 언제쯤 밝혀질까. 분명히 누군가는 알고 있을 세월호 참사가 미제로 남아 있는 한 유족들의 가슴에 든 피멍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꽃다운 10대 청소년들의 집단 사망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유례 없는 해상사고로 남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 분들에게도 더 없는 위로의 뜻을 전한다.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오후 3시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제 3주차장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이 개최된다. ‘기억·약속·책임’이라는 기조로 4,160명의 합창과 전국적으로 다양한 추도식이 진행된다.

필자는 경기도 안산에 34년째 거주하는 시민이자 언론인으로서 사고 당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가 사고 현장을 취재 한 바 있다.

일부 생존자들이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병원 관계자의 과도한 응대로 마찰을 빚은 일부 기자들의 상황을 보도했다가 국민적 공분에 직면한 적도 있었고 이후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기도한 바 있었다.

이후 적어도 1년 동안 안산은 초상집이 아니라 초상도시였다. 웃지도 못하고 박수는 물론 건배도 못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시 전역에 드리웠지만 감히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문재인 전 정부의 “얘들아 고맙다”라는 방명록이 대대적으로 홍보되면서 권력의 그늘 아래 희생자들에 대한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는 주체는 유족이 아니라 정권이었다. 추모와 그에 대한 보상과정은 별개였음에도 한번 시작된 세월 호 사건은 특별법이 정해지면서 정치인, 언론, 시민단체 등 그 어떤 분야에서도 함구했다.

여차하다간 유족의 분노가 아니라 국민적 분노에 직면해 질의를 제기하는 그 자체가 사회적 무덤을 파는 일이 됐다. 참사 발생일로부터 3년이 지나도 화랑유원지 입구에는 만장기와 추모 현수막 수백 장이 걸려있었고 거리에는 노란색 배너깃발이 설치되어도 당연했다.

지역 상권은 갈수록 피폐했지만 이를 세월호 참사로 인한 여파로 단정 지을 만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세월호 사건의 두 번째 희생자는 안산 시민이었다. 2014년 대비 10년이 지난 2024년 인근 도시의 인구가 30만에서 100만을 기록할 때 안산은 75만에서 65만으로 줄었고 학생 수도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사고 발생 2년 뒤인 2016년에는 각계 전문가 25인으로 구성된 세월호 관련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지금의 화랑유원지에 추모시설을 유치한다는 내용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대부분 외부인사로 구성된 이들 중 몇 명은 안산시의원, 시민단체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필자 또한 객관적 의견을 내놓았지만 논의 기구였던 건립위원회의 논의는 결정기구로 돌변했다.

당시 안산시에 따르면 시민들의 찬성 의견으로 해양수산부에 보고되었고 공청회나 시의회 결정 등 각종 절차는 졸속으로 형식적인 모양만 갖추었다. 그렇게 시작된 화랑유원지 추모공원의 핵심은 현재 흩어져 안장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골함을 화랑유원지로 한데모아 영구히 안치하겠다는 것이다.

건립위원회의 명칭도 416생명안전공원으로 개명되었고 이에 시민단체들은 적극 항변했다. 택시운전사, 이삿짐센터 직원, 회사원, 주부, 일반 시민 등 약 150명으로 구성된 ‘화랑지킴이’가 결성되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총 160회 안산시청사 앞에서 집회시위를 가졌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모든 언론까지 외면했다.

오히려 집회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나 사법기관에 고소당하거나 한 푼의 예산도 없이 스스로 모금해 준비했던 시위 물품들마저 유지하기 어려웠다. 화랑지킴이의 대표로 나선 필자 또한 간접적 압박과 다양한 형태의 행정적 비협조로 인해 물질적·정신적 피폐함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악몽 같은 고소·고발과 원인도 알지 못하는 비난은 물론 세월호에 대한 일말의 추모 여지까지 사라졌다. 건립추진위원회에는 유족대표도 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추모공원을 두고 도심 한복판에 납골당을 세워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희생된 학생들이 학교와 가까운 공원이라 놀았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강광주 안산시의원이 대체 부지로 인근 지역 매립지를 건의하자 쓰레기 더미위에 어떻게 아이들을 안치 시킬 수 있냐고 항변했다. 이에 필자가 화랑유원지 또한 산업폐기물을 묻은 곳이며 중장비로 파헤쳐 본 사진까지 제공했지만 오직 해당 부지만 주장했다.

심지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교통이라면 수인산업도로가 가까운 외곽에 정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도 주장했지만 화랑유원지에 대한 주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당 부지는 초지역세권으로 전철과 신안산선, 고속철도까지 정차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막대한 토지대금은 물론 주변시설 또한 납골당이란 인식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 용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이를 반증하는 증거로는 해양수산부과 국무총리실 차관급 인사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필자가 물었다. 만약 납골당 안치를 빼고도 다른 시설물이 들어서겠냐고, 물론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되어도 안산은 추모의 도시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 발전의 역동적인 심장부에 국가공단의 배후기지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할 부지가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다시 깨워 도심 한복판으로 옮겨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실을 대부분의 안산시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몇 명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허위로 출발한 납골당, 416생명안전공원 명칭 그 어디에도 213구의 유골함이 안치 된다는 점을 알 수는 없는 일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안산의 주인은 국회의원과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었음에도 이를 아는 시민들의 시민정신은 실종된지 오래다.

오로지 세월호가 안산의 주인격이며 그에 대꾸하는 자체가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8년 동안 그 길을 걸어왔고 그 길에 대한 발자취가 있으며 위치 변경과 시민동의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었다. 봄비가 내리는 화랑유원지. 이제는 늦었다. 첫 삽을 뜨고 준공식에서 모두 알게 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