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우리 것이 소중하다
[덕암칼럼] 우리 것이 소중하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6.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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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모두 외국산으로 변하고 있다.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수입산으로 채워지고 스포츠마저 듣도 보도 못한 종목들로 겨룬다.

태권도는 한국이 종주국으로 알려지자 2018년 중국에서는 국기원 단증을 사용하지 않고 한 유명 배우는 태권도가 중국 무술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물론 에피소드로 그쳤지만 우리 고유의 무술 태권도는 방어개념이 강하다.

다른 종목처럼 상대방을 공격하는 동작보다 막는 동작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인가 외적들의 숱한 침략을 막기만 했지 제대로 공격한 적이 드물다. 또 한 가지 경기 종목으로 씨름이 있다.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나 스모 등 국가별 공유의 운동 종목을 손꼽자면 한국에는 태권도에 이어 씨름이 대세다. 씨름은 명절이나 단오 때 즐기는 풍습 정도로 여기지만 실제 국어사전에서 요약된 내용을 찾아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로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치자면 윷놀이나 연날리기도 이에 포함된다. 온갖 스포츠를 다 종목으로 치면서 우리 고유의 종목은 기념일도 없고 이렇다 할 대회도 없는 편이다. 외국에서 빙판에 둥근 돌을 밀어내고 원형에 가까울수록 승부를 짓는 행위도 국제 스포츠다.

지혜나 예리한 운동신경을 종목 선정의 기준으로 보면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공깃돌 던지기나 비석치기, 줄넘기, 말 타기 놀이 등 얼마나 많은 우리고유의 종목이 있을까. 6월 10일은 ‘씨름의 날’이었다.

2012년 1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씨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씨름의 진흥을 돕고자 음력 5월 5일을 법정 기념일로 정한 날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넘기기를 하면 팔씨름, 무릎을 맞대고 넘기기를 하면 다리씨름, 허리춤에 샅바를 두르고 넘어뜨리기를 성공하면 이기는 경기다.

우리 고유의 씨름은 누구나 장소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경기지만 보는 사람도 쉽게 승부를 판단할 수 있으며 체력, 기술, 투지 3가지가 모두 어우러져야 이길 수 있는 종목이다. 뿐만 아니라 온몸의 근육과 판단력, 인내심과 상대방의 마음도 읽어야 한다.

선수 간에는 직접 피부가 닿는 경기이면서 상호간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된다. 승부를 떠나 인간적인 정이 흐르는 순간이다. 격투기처럼 상대방을 가격하거나 직접적인 통증을 유발하는 종목이 아니다.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르는 과격함보다 오로지 힘이나 기술로만 넘어트리는 것이 전부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 고분벽화에도 나와 있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서도 늘 그 흔적이 이어져 온 바 있다.

불행히도 1947년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이후에 다시 복원된 종목이다. 씨름은 우리 문화와 풍습의 주인공 이었다. 단오뿐만 아니라 삼짇날이나 초파일, 백중, 중양절 같은 날도 씨름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생활체육이었다.

양반·평민·상것으로 계급사회 구습이 만연했던 과거에도 씨름판은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25장 중 하나인 씨름 장면을 보면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엿을 파는 엿장수부터 그네를 타는 여인들, 물가에 노는 아이들, 노름판을 벌이는 한량.

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지금처럼 온갖 종목이 없었던 과거, 씨름은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맥을 이어오던 씨름이 현재는 정식 스포츠 종목이 됐다. 직경 8m의 원형 모래밭에 1.5m의 보조경기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정해졌다.

체급별로는 경장, 소장, 청장, 용장, 용사, 역사, 장사급 등 7가지 체급이 있고 단체전은 7명으로 한정된다. 이 밖에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나뉠 수 있는데 3판을 겨뤄 2판을 이기면 승리한다.

이 밖에 세밀한 경기 운영 규정이 있지만 나머지는 독자들이 직접 찾아보길 권한다. 알아서 나쁠 건 없다. 남들이 다 아는건 알아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우리 고유의 씨름에 대해 기본적인 것만 익혀도 그 작은 차이로 엄청 애국자가 되어버린다.

씨름 심판을 수년간 경험한 전문가에 따르면 씨름처럼 인간적인 종목도 없지만 점수를 매기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용을 쓰는 모습을 보노라면 온몸의 신경이 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만큼 선수와 심판이 떨어져 있어도 공감대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말은 천 번을 해도 꼰대들의 합창이라 한다. 남의 것은 무조건 높이 받드는 못된 문화가 어디서부터 형성되는 것일까.

대중들은 여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군중심리가 그러하다. 수십 만 마리의 참새 떼가 그러하고 바다 한가운데 정어리 떼가 그러하다. 종족이 멸종 할때까지 먹히고도 무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에 다 먹히고 나서야 몇 마리만 남아서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진다. 경제, 군사, 다 상황에 따라서 변해야 하지만 적어도 우리 고유의 민속경기나 문화마저 기억 속에 흩어진다면 그래서 훗날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슨 역사를 가르치고 한민족 고유의 전통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강원도 강릉 경포대에서 풍등을 날려보았다. 오랜만에 해본 것이라 서툴긴 했지만 고체 연료에 불을 붙여 밤바다에 띄우는 과정은 충분히 익숙해진 동작이었다. 중국이나 대만에서도 유명한 풍등은 우리나라 지자체 행사에서도 간혹 등장한다.

한국인이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급변하는 외국문물의 도입, 아무런 검증 절차도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라하는 사회적 분위기. 우리 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촌스럽다는 과소평가,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굳이 참여하거나 지키는 노력은 없을지라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아이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지 않을까. 모르면 인터넷 검색해 보고 미루지 말고 직접 말해 줄 수 있는 토막상식이 오늘의 골자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