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무엇 하나 터지면 온갖 난리를 치다가 얼마 못 가 잊어버리거나 엉뚱한 대책을 세워 멀쩡한 사람을 잡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속담에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빈대는 잡아야 하지만 과하게 대응하다 보면 한 칸뿐인 초가집을 태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얼마나 요란을 떨었던가.
특히 화재나 자연재해, 제조, 건설 등 일선 현장에서 인명피해가 나면 언론, 정치권, 해당 분야의 업종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최근 서울시청 앞 교통사고를 두고 사고 원인에 대해 분석 중이다.
급발진이냐, 운전자 과실이냐를 두고 별 상관도 없는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 운전자의 실수 쪽으로 몰고 가는 형국이다. 서울시청 앞 사고 이후 유사한 고령운전자의 사고를 연이어 보도하는 것도 뉴스 프레임으로 보이지만 사고 당시 운전한 당사자의 의견은 별달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과수는 사고 차량에 대한 정밀 감식·감정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았으며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2일 사고 운전자는 3차 조사에서도 급발진을 주장했다.
어떤 문제든 가장 중요한 증언이나 사고 원인 또는 정황상 핵심적인 원인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밝혀질 문제이고 일단 당사자의 의견을 중시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경기도 안산의 운수업체에서 근무한 운전자는 대형면허 소지에 오랜 기간 사고 없이 운전에 능숙한 68세의 남성으로서 음주나 약물중독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를 알리는 뉴스에는 처음부터 만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의 증가율이 함께 보도됐다.
사고 내용에 통계를 포함시켜 마치 나이가 많아 사고를 낸 것으로 각인되는 전형적인 뉴스 프레임이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그동안 발생한 교통사고 중 연령이 65세 이상 되는 사례를 예로 들어가며 마치 노인들만 교통사고를 내는 것처럼 보도됐다.
고령자 운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병행됐다. 그러면서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한편 아직 반납해야 할 노인 운전면허가 500만 장이나 된다고 보도됐다. 마치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반사 신경이 둔해지고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맞는 이론이다. 하지만 나이가 젊다고 운동신경이 발달되어 있고 많다고 둔하다는 이론은 각 개인의 생체리듬이나 신체 조건, 평소 운동 여부에 따라 천차만별임에도 나이가 들면 운전이 둔하다는 결정을 미리 내리고 그 결정에 맞춰가는 전형적인 짜맞추기식 주장이다.
필자는 5살부터 자동차를 운전했다. 당시 도로도 비포장이었고 신호등도 없었으며 단속 경찰도 없었다. 자동차 배기음은 붕붕거리며 입에서 나는 소리였고 이 세상 못가는 곳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운전해도 지치지 않는 소중한 보물이었는데 훗날 성인이 되어 1종 면허를 따고 보니 어릴 적 장난감 자동차 운전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었다. 욕심이 넘쳐 대형면허까지 따서 군 복무 시절 불도저와 그레이더 등 중장비까지 몰고 다니는 기술자가 됐다.
이후 덤프트럭, 버스 등 지상에 굴러다니며 엔진소리 나는 것들은 모두 몰아봤으니 소원을 푼 셈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알게 된 자동차의 구조. 감각은 자동차가 몸의 일부분이라고 할만큼 친밀하고 예민한 일심동체가 됐다.
필자가 서울시청 앞 사고 운전자의 의견을 좀 더 중시 하라고 하는 것은 일면식의 운전자를 두둔하기 위함도 아니고 유족들의 아픔을 더할 이유도 없다. 다만 운전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필자 입장에서 볼 때 정확한 수사를 하도록 주변에서 엉뚱한 소리 좀 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민감한 상황에 추측성 발언이나 무관한 예를 들어가며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수사기관의 판단만 흐리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빈대는 무엇이며 초가삼간은 무엇일까.
빈대는 사고 운전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수사기관의 과학적인 노력이다. 그래야 졸지에 억울하게 사망한 망자들의 한을 풀 것이며 죄가 있다면 처벌받아야 마땅하고 급발진이라면 자동차 제조회사의 책임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급발진 의심사고가 있었지만 아직도 급발진이라고 인정하고 보상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한번 보상하면 유사한 사건들이 급발진으로 판명될 근거를 남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급발진이 아닌 것도 보상의 범위로 들어온 확률이 높아지며 그 기준점에 경제적으로 우월한 자동차 제조회사와 일반 시민들의 소송은 끊임없는 논란의 소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빈대 말고 초가삼간은 어떤 점을 의미하는 것일까. 서두에 강조했던 것처럼 하나의 사고를 전체로 몰아 65세 이상 노인들이 운전대를 놓거나 특정 구간, 시간, 속도 등을 제한받아 운전해야 하는 도로교통법이 정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렇게 되면 사고가 줄어든다는 과학적 증거나 합리적 통계나 현실적 사례를 내놓을 수 있을까.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자칫 지방 소도시에서 한밤중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도 운전대를 잡을 수 없거나 생계형 푸드 트럭을 운전하던 자영업자나 용달로 한평생 기름밥을 먹던 일명 달구지 인생은 막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민생이 무엇인지, 일반 국민들의 삶이 어떤 상황인지, 뭘 제대로 알고 개정 법안을 입안하든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지 사고가 터질 때만 요란을 떠는 촌극은 이제 신중히 검토하는 성숙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성급한 정책이 낳은 또 다른 단점은 일반 국민들에게 피하지 못할 제2의 고난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게 잘난 척하며 보여주기식의 정치인들이 욕심내는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비현실적인 발상을 하는 정치인보다 그런 정치인을 찍어주는 유권자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적 공공의 적, 멀리 있는 북한의 미사일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