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작년 말에 이어 지난 6월 임시 국회를 앞두고도 담뱃값 인상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5·31지방선거 때문에 흐지부지 됐었다. 선거에 참패할 요인도 많은데 애연가들의 호주머니까지 턴다면 표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한몫했다. 복지부는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선 담뱃값 인상이 꼭 통과되어야 한다며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한다.
담배는 ‘세금을 피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2500원짜리 담뱃값에 붙은 세금은 1542원. 소비세부터 지방 교육세, 국민건강증진기금, 폐기물부담금, 연초 경작농민 안정화기금, 부가세 등 6가지나 되는 세금이 붙어있다. 담뱃값의 61%가 세금인 셈이다. 이렇게 정부가 매년 담배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만 5조원에 달한다. 정부 부처 중 문화부, 외교부, 법무부, 과기부 예산을 모두 합한 금액이나 된다.
이러니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복지부 설명을 순수하게만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복지부는 담뱃값을 올리면 성인 남성들의 흡연율을 50%에서 30%로 낮출 수 있고, 담뱃값 올린 돈으로 암 예방과 치료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을 전제로 이미 올 예산을 짰기 때문이다. 500원 인상을 감안해 그 중 200원을 건강보험 재정에 넣을 계획을 세운 것이다. 올해는 1450억원. 내년에는 3500억원이다. 한마디로 돈 들어올 구멍을 다 만들어놓고 사업 계획을 짠 것이다.
이 같은 복지부의 ‘외줄 타기’ 예산 편성으로 담뱃값 인상이 안 되면 우선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쓸 저소득층 5대암 검진 예산과 강원·제주지역 암센터 건립비 등 96억원도 차질을 빚고, 저출산고령화 기본대책의 예산조차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담뱃값을 올려봐야 흡연율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만 커진다”며 반대해 왔다. 담배는 저소득층에서 더 많이 피운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담뱃값 인상 문제는 인상이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을 넘어 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 불발로 내년까지 5000억원이 안 들어오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유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지금 담뱃값 인상이냐, 아니면 내년 보험료 대폭 인상이냐를 놓고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은 당초 내년에 보험료 5.6%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7~8%로 올릴 수밖에 없다. ‘84㎜의 유혹’이라는 담배. 그 끊기 힘든 담배를 무기로 복지부는 애연가들에게 전체 국민 건강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정영기 제2사회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