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담뱃값 인상이냐, 보험료 인상이냐
[데스크 칼럼]담뱃값 인상이냐, 보험료 인상이냐
  • 경인매일 webmaster@kmail.com
  • 승인 2006.09.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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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 예산편성, 건강보험 재정 위기
담뱃값 500원 인상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1개비에 25원씩 올리겠다는 셈이다. 인상의 명분은 고맙게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이다. 담배 광고도 규제해 보고, 흡연 경고문도 담뱃갑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크게 키웠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국민이 담배를 외면할 정도로 ‘비싼 값’을 만드는 길만이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말에 이어 지난 6월 임시 국회를 앞두고도 담뱃값 인상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5·31지방선거 때문에 흐지부지 됐었다. 선거에 참패할 요인도 많은데 애연가들의 호주머니까지 턴다면 표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한몫했다. 복지부는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선 담뱃값 인상이 꼭 통과되어야 한다며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한다.

담배는 ‘세금을 피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2500원짜리 담뱃값에 붙은 세금은 1542원. 소비세부터 지방 교육세, 국민건강증진기금, 폐기물부담금, 연초 경작농민 안정화기금, 부가세 등 6가지나 되는 세금이 붙어있다. 담뱃값의 61%가 세금인 셈이다. 이렇게 정부가 매년 담배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만 5조원에 달한다. 정부 부처 중 문화부, 외교부, 법무부, 과기부 예산을 모두 합한 금액이나 된다.

이러니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복지부 설명을 순수하게만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복지부는 담뱃값을 올리면 성인 남성들의 흡연율을 50%에서 30%로 낮출 수 있고, 담뱃값 올린 돈으로 암 예방과 치료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을 전제로 이미 올 예산을 짰기 때문이다. 500원 인상을 감안해 그 중 200원을 건강보험 재정에 넣을 계획을 세운 것이다. 올해는 1450억원. 내년에는 3500억원이다. 한마디로 돈 들어올 구멍을 다 만들어놓고 사업 계획을 짠 것이다.

이 같은 복지부의 ‘외줄 타기’ 예산 편성으로 담뱃값 인상이 안 되면 우선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쓸 저소득층 5대암 검진 예산과 강원·제주지역 암센터 건립비 등 96억원도 차질을 빚고, 저출산고령화 기본대책의 예산조차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담뱃값을 올려봐야 흡연율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만 커진다”며 반대해 왔다. 담배는 저소득층에서 더 많이 피운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담뱃값 인상 문제는 인상이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을 넘어 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 불발로 내년까지 5000억원이 안 들어오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유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지금 담뱃값 인상이냐, 아니면 내년 보험료 대폭 인상이냐를 놓고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은 당초 내년에 보험료 5.6%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7~8%로 올릴 수밖에 없다. ‘84㎜의 유혹’이라는 담배. 그 끊기 힘든 담배를 무기로 복지부는 애연가들에게 전체 국민 건강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정영기 제2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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