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칼럼] 9년 장수 김한복 시장 洋女 엽색기
[김운성칼럼] 9년 장수 김한복 시장 洋女 엽색기
  • 경인매일 webmaster@kmail.com
  • 승인 2006.12.27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평론신문 발행인

“여자이야기라면 군침부터 삼키는 K기자가 시장님 접여(接女)도 미국여행의 수확물로 삼는 셈치고 털어 놓으시지요”

짖궂게 던졌더니 김 시장은 시찰단이 M시청에 들렸을 때 여성시장이 출타중이여서 스케줄을 바꿔 직원들 집무실에 들려 쭉쭉 뻗은 여직원들의 각선미는 약과이고 정작 여시장 접견 때는 여접(女接)의 황홀함이 절절했다는 것이다.

일행이 시장실에 들어가서 안내자가 김 시장을 가르켜 한국전쟁 전투지구인 경기 수원 땅에서 왔다는 소개를 하자 여성시장은 원더풀, 웰컴을 연발하면서 악수하던 손등 위에 키스를 하더니 어렵쇼. 이번에는 왼쪽 귀에 대고 엷은 키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일행에게는 의례적인 건성악수였지만 김 시장은 손등에 귀밑에 키스세례를 받았으니 다른 일행들이 부러울 만큼 칙사대접 그 아닌가.

당혹스런 김 시장은 안내통역에게 여성시장이 “나에게 반했느냐”하고 귓속말을 하자 “당신 이 전투지구 시장이니 자신들의 아들들을 생각하여 반기웠다”고 풀이했겠다.

김 시장은 얼떨결에 여성시장을 향해 가볍게 머리 굽혀 답례를 하니 이번에는 여성시장이 다가와 포옹을 한 것이 아닌가. 이 또 한번 장내는 자신만의 환영식장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고 서양여성과의 겉치례나마 접신(接身)은 지금도 황홀하다는 것이라.

하지만 짖꿎은 기자들은 “시장님 그것은 겉치례 예의표시일 뿐이요”하고 되받아치자 “일행 이 행동은 같이 하기 때문에 별 수작을 부릴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김 시장은 닭 대신 꿩이라 하듯 숙소로 돌아와서 1일간의 자유시간에 기어코 주항(酒巷) 여성 정복행각을 ‘신들린 사람 모양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용케도 시내구경을 나간 김 시장은 호텔의 네온이 빙빙도는 방에서 일각이 여삼추로 꿀꺽꿀꺽 침을 삼킬 때 후리후리한 미끈한 양녀가 들어오더니 웰컴 유-를 연발하면서 옷가지를 훨훨 벗어던진 알몸으로 다가오더니 김 시장이 주저주저 우물대자 김 시장을 알몸으로 만들고는 아래위를 접구(接口)하여 체면치례는 저리가라 하고 자신의 남근(男根)이 대추방망이로 발기됐다는 것이다.

김 시장의 손짓과 입놀림에 군침 삼킨 일행은 “그래 여접 재미는 어떠셨소” 다급한 시늉으로 묻자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격으로 사내가 여장(女丈)에게 당한 걸로 끝나고 말았지”
미심쩍은 기자들은 “천하의 여색호걸(女色豪傑) 시장님이 당하시다니”
“말도 마시오. 성혈(性血) 심광(深廣), 각두미접(角頭未接)이었소. 풀이하자면 여자의 성기안 속이 깊고 넓어서 채워지지 못한 채 남근 끝이 찾지 못하여 허우적거리기만 하다가 끝내 정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양녀도 별 볼일 없다 짜증을 냈겠구려”
“아니지 접신 시간을 20여분이나 끌어 줬더니 헤어질 무렵에는 컴백어겐을 연발하여 다시 들리라는 것이었지. 모름지기 빳빳한 내 남근이 그녀의 내피(內皮)를 자극했던 모양이였나지.”

이런 여색행각을 벌인 김 시장이만 그는 52년 초대 민선 시장직에 당선된 후 2대, 3대에 걸쳐 내리 9년을 누리다가 60년 4.19 학생 민주운동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하자 시장직을 떠났었다.

이 기록이 지금 사람이 믿거나 말거나 그때를 겪은 필자의 솔직한 술회다. 지금 김 시장은 한낱 가당치도 않게 번진 도하사건에 고민하는 모양이나 정치와 여성편력은 함수관계이니 치치도외시 한들 어떤가.

경인매일
경인매일
webmaster@k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