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용서 없는 삶은 각박하다
사과와 용서 없는 삶은 각박하다
  • 원 춘 식편집국장 대우 wcs@
  • 승인 2007.10.11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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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정책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다. 구락 28일엔 자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검찰·경제계·언론을 특권집단이라며 맹비난하고 이들과 충돌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무회의에서 이제까지 참아왔는데 앞으로는 할말 하고, 하나하나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진정한 사과는 강한자(者)만이 할 수 있다. 사과도 정책이다. 얼마 안 있으면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맘 편히 쉴 내집 한칸이 없는 국민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오고…. 우리가 이런 진심 어린 대통령의 사과를 들을날이 있을까.임기가 몇 달 남지도 않았는데.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사과가 가장 절실한 쪽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다. 용서없는 삶은 고되고 각박하다. 용서 그것은 삶의 지혜고 삶의 숨통이다. 미움과 질투 그리고 원한 하나씩을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용서 없는 삶은 얼마나 고되고 각박한가. 자신을 떠난 연인, 우정을 버린 친구,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 나를 감옥에 가둔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 아직도 그들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증오와 복수의 감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런 감정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용서라고 필자(筆者)는 본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라. 미움과 원한, 대립과 갈등의 칼날이 번뜩이지 않는가. 보수는 보수끼리, 개혁세력은 개혁세력끼리, 늙은이나 젊은이나 서로가 분을 삭이지 못하며 상대를 탓하고 헐뜯고 있지 않는가. 가진자는 가진자대로 없는자는 없는자대로 불만과 불평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로 보고 증오와 미움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집권세력은 대체로 개발독재 세력의 피해자다. 부당하게 감옥에 갔거나 모진 고문을 겪기도 했으며 직장을 잃기도 했다. 반체제 세력의 막대로 긴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기득권 보수세력은 아무런 연민의 정을 보내지 않았다. 이들이 집권했다 실세가 되었다. 자신을 감옥에 보내고 어둠의 자식으로 살게 한 기득권 세력에게 증오와 원한이 없을 리 없다. 더러는 시대 탓으로 돌리고 훌훌 털어버린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며 증오의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보수 기득권 세력도 분을 삭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먹고 살 만한게 누구덕인가. 개발의 지혜는 고루 나눠 가지면서 왜 독재의 악령만 우리에게 덮어씌우느냐. 오로지 증오와 보복의 원한으로 개혁을 핑계 삼아 기득권을 목조르고 개혁 홍위병 세력으로 똘똘 뭉쳐 다시 한번 집권하자는 몸짓이 보이기에 보수세력들이 이젠 분쇄하자는 쪽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서로가 상대를 가해자로 보고 있기에 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가위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러 정치적 내전상황은 해방 공간의 좌우 갈등 대립과 별반다를 게 없다. 겸손한 권력의 모범을 보일 때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먼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를 용서하라. 서로가 시대적 역할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라. 그리고 사과하라. 먼저 용서하는 자가 승자다. 좌우합작이나 중도통합론만큼 기회주의적이고 회색적인게 없다지만 이런 화합과 절충이 우리 역사에 없었기 때문에 그 끝이 허망했고 국운(國運)이 석했다.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을 겪화시키는 독한 권력의 칼끝을 서로가 거둬라. 좌우를 통합하고 원리와 현실을 아우를 수 있는 겸손한 권력의 모범을 지도자가 보여라. 용서와 사과 그리고 화합의 탕탕평평책이 나와야 위기의 내전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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