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生者必滅(생자필멸)
[칼럼] 生者必滅(생자필멸)
  • 김동초 기자 chodong21@hanmail.net
  • 승인 2018.05.15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가 그치면 뽀송한 하늘엔 어릴 적 게걸스레 뜯어 처먹던 솜사탕 같은 구름이 꾸적거리며 한 폭의 배고픈 수채화가 된다. 아울러 연두의 숲과 퍼질러져 눈에게 시린 행복을 준다.

바람은 이젠 초록이 되어가는 나뭇잎을 서걱거리며 지나와 봄을 패대기치고 있다. 끝 봄의 바람은 볼때기만 스쳐도 정겹다. 이게 초록별 지구의 일상이다.

그리고 지구라는 이쁜 별은 극도로 자신을 짓밟는 호모사피엔스조차도 차별하지 않고 이렇게 일관 되게 고운 풍경을 조건 없이 배설한다.

생떽쥐베리도 어린 왕자를 통해 이런 감정을 느껴 지구라는 별을 사랑했을 것이다. 이런 정겨운 자연 속의 지저분한 정치 세계 속에서도 세월은 또 어김없이 꼬약꼬약 흘러간다.

하지만 어둠이 점령한 숲은 약간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냥 어둠의 무게만으로도 풀잎들은 종종 눕고 있다.

검댕 속으로 시커멓게 웅크린 숲은 약간은 무섭기도 하다. 비가 내리는 밤의 숲은 더 무섭다. 아무리 무서워도 시간은 제 갈 길을 가더니 다시 아침을 몰고 오더라.

그렇게 다시 오는 아침처럼 정치권에도 밤과 낮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삶은 음과 양의 안에서 뒤지고 살고를 거듭하는 게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며칠 전 날짜를 택해 생을 마감한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도 자연의 이치 안에서 간 거다. 그냥 그렇게 간 거다. 그가 한 말 중 뇌에 콕 찍히는 말이 있다.“80세가 넘고 나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나머지 25년은 剩餘(잉여)였을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꼭 뒤진다. 그게 자연이고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自然(자연)이란 단어에서 자연스럽다는 말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부자연스러움마저도 느꼈다.

이어 세상 거의 모든 일이 자연스러울 진데 정치권만은 왜 이다지도 부자연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아이러니마저 느낀다.

하긴 부자연스러운 게 오히려 정치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정치권은 날이 서 있다.

그렇게 날이 선 정치권이 국가와 세계 대세인 남북화해와 교류의 진전을 가로막을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북쪽의 대장이 팍팍 변해 돌아가고 있다. 미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도 생자필멸의 슬픈 자연스러움을 느낀 것일까!

어찌 됐든 좋다. 부자연스러워도 좋고 미쳐도 좋다. 그냥 한 핏줄을 나눈 자연의 혈육끼리 좀 부둥켜안고 살아 봤음싶다.

이렇게 동족끼리 눈을 맞추고 손을 잡으며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갈 수만 있다면 미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미치는 것도 삶의 자연스런 한 현상일 것이다. 살다가 한 번쯤 미치지 않고 죽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뒤진다. 그게 자연이고 자연스러운 거다. 不滅(불멸)만큼 지독한 형벌도 없을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이다.” 생자필멸은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행복도 끝이 있듯 아픔도 반드시 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행복을 잉태하는 삶의 고리다. 헤르만 헤세가 윤회를 인정하며‘수레바퀴 아래서’를 쓴 것처럼.

자연의 가장 자연스러움이 생자필멸이다. 정치도 이 순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욕심부리지 말자.

 

 

 

 
 

 

 

김동초 기자
김동초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odong2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