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한국 이름 박진주를 아십니까
한국을 사랑한 한국 이름 박진주를 아십니까
  • 김균식
  • 승인 2020.06.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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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출생, 1973년 3월 6일을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미국의 소설가 펄벅은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국명 박진주로 표명하기도 했다.

영어로는 Pearl Sydenstricker Buck, 중국어로는 싸이전주로 불리던 미국인 펄벅 여사는 남다른 한국사랑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남긴 바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한국에서 미군철수 의사를 밝히며 일본의 식민지가 더 낫다고 했을 때 한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며 미국이 영국에 지배받던 것과 비유한 바 있다.

미국인으로서 중국에 오래 살았던 그녀는 동양문화에 익숙했지만 외려 한국의 매력에 더 매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의 조국인 미국 다음으로 한국을 사랑한다는 펄벅 여사는 한국이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자의 자녀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중국 신문에 한국인의 독립은 당연한 것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민족의 미래를 가늠하는 연합국의 카이로 선언을 믿을 게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가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며 자주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소달구지에 볕 짚단을 농부가 나눠 메고 가는 모습과 우리가 당연하듯 감나무 까치밥을 남겨둔 모습에 동물까지 아끼는 한국인의 따뜻한 심성을 보았고 그런 모습에 반해 더욱 한국을 가슴깊이 심었다는 펄벅 여사는 한국의 독립투사와 그들의 애국심에 한국인 이상의 열정을 함께 한 바 있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발발 해인 1950년 ‘한국에서 온 두 처녀’ 외에 1963년 ‘살아있는 갈대’와 1968년 ‘새해’ 등을 집필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펄벅 재단을 세우기도 했다.

앞서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동풍서풍’과 1931년 빈농부터 대 지주가 된 ‘대지’를 출판하여 인류의 문화적 욕구충족에 일조 했다.

열정적인 집필 끝에 1938년, 미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다.

1967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 희망원을 건립하여 1973년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곳에서 한국전쟁 고아, 혼혈아동을 손수 돌보고 미용과 양장기술 등을 교육시켜 왔는데 펄벅 여사의 사망 이듬해에 문을 닫았다.

세월이 약 30년이나 지난 2006년 부천시는 펄벅의 박애정신을 기리기 위해 옛 소사 희망원 자리에 부천펄벅기념관을 설립했다.

현재는 부천시가 2019년부터 부천문화원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오늘 6월 26일은 펄벅 여사가 태어난 날로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점에 대해 우리 다 같이 감사의 마음과 함께 후손들에게 전달 정도는 해주는 게 고마움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펄벅 여사, 자신의 큰 딸은 지적 장애인이었는데 자신이 작가로 성공하게 된 동기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연한 모습에 반해버린 펄벅의 한국사랑은 자주독립 외에도 전쟁 고아들에 대한 교육, 여성인권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는 등 개화기 시대에 필요한 보약 같은 활동에 눈부신 결과를 가져왔다.

나름 먹고 살기만한 작금의 현실에 새삼 지난 인물을 재조명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미처 몰랐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음에 대해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이제 알았으니 길이 기려야 한다. 그래야 내 나라에 대한 애착과 구국의 결단도 생기는 것이다.

한 평생을 한국 사랑에 깊이 흔적을 남긴 펄 벅 여사의 탄생일에 대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작금의 세태를 보면 국경일 태극기 하나 다는 집 없고 나만 괜찮으면 괜찮다는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어떤 결과든 절로 되는 것은 없다.

작은 돌멩이가 탑을 쌓듯, 작은 정성과 마음이 모이면 태산도 옮기도 나라도 지키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은 북풍한설 산정상이라도 갈 수 있으나 보기 싫은 사람은 옆집에 살아도 출근길 엘리베이터조차 같이 타고 싶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있으면 몸이 가도 몸이 가면 정도 간다는 말’이 있다.

내가 있어야 이웃과 사회가 있고 그래야 국가가 있는 것일진대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히면 가정의 울타리에서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이 자연스레 솟아나는 것이다.

뭐 별건가 국경일 태극기 달고 각자의 위치에서 힘들더라도 잘 견디며 하던 일 잘하는 것, 그것이 대단한 대한민국의 밑천이다.

희망을 잃고 주저앉아 자신만 괴롭다고 자학하며 하던 일을 포기하는 것이야 말로 망국의 지름길이다.

작은 정성 하나가 오천만을 곱하면 얼마나 클까. 펄벅 여사 정도는 못되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많다.

반면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노력과 정성이 모여 현재의 호강을 누리고 있음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오늘은 한 여성에게 감사해야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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