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경찰이다
이춘재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경찰이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07.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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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한국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알려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재수사가 1986년 첫 사건 이후 34년 만에 종결됐다.

경찰은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사건을 저질렀고 그 원인에 대해 욕구충족을 위해 저지른 범죄였다고 발표했다.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인 이춘재는 지난 사건 모두가 공소시효 만료로 별도의 처벌을 받지 않겠지만 그동안 무리한 수사로 국민의 지탄을 벗어나기 힘든 경찰은 신뢰추락의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이런 조사 과정에서 폭행·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허위 진술서 작성 강요, 조서 작성에 참여하지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한 사실 등이 확인됐다는 경찰관계자의 자백은 결자해지의 의지를 밝혔지만 이 또한 말 말고는 달리 할게 없는 공염불이다.

일부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관들을 조사 중이지만 과연 내 식구가 일하다 오버한 것을 경찰 스스로가 얼마나 다부지게 다룰지 의문이다.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고 전체 수사과정과 잘잘못 등을 자료로 남겨 역사적 교훈으로 삼을 것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발표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춘재의 자백에 관련 경찰이 얼마나 노심초사했을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과학수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경찰이 우매한 국민들을 가해자로 몰아 갈 때 가난하고 빽 없다는 이유로 짹소리 못하고 당한 심경이야 오죽했으랴. 여기까지만 하면 경찰은 비난의 뭇매를 피하기 어렵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경찰을 속칭 짭새라고도 하고 간혹 똥파리라고도 부른다.

어원이야 인터넷 찾아보면 알 수 있고 어쨌거나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11만 명이 넘는 경찰이지만 경찰 1인당 지켜야할 국민 치안수요는 약 520명에 달한다.

이쯤하고, 언제부턴가 피의자들 조사과정에서 걸핏하면 민주경찰 운운하며 큰소리도 못 치게 하고 과거처럼 말로 안 되면 쥐어패서라도 자백을 받아낼 수도 없는 현실 아닌가.

피의자나 참고인들이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게 많다보니 조사관들 대하는 걸 동네 후배 대하듯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뿐인가. 급할 때 찾다가도 사건이 해결되면 화장실 갈 때 올 때 다르듯 자신의 이익 위주로 불만을 토로한다. 안 되면 청문감사관이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직결된다. 한마디로 못해 먹을 만큼 세상이 밝아졌지만 어쩌랴 변화에 적응하는 게 인간이다.

경찰이 공포나 두려움의 대상에서 동사무소 등본 발급하는 사무직원 정도로 편하게 된 것은 민주화라는 정부방침의 생색에서 시작됐다.

과다한 업무에 순직자나 극단적 선택이 줄을 잇는 경찰의 근무과정은 국가공무원이라는 안정된 보수와 직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들의 명예와 이미지가 각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순간에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교통, 여성청소년, 형사, 경제, 보안, 경무, 마약 등 분야별 업무는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통해 범죄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지만 과학수사를 자처하는 경찰이 이춘재 한사람 때문에 5천만 국민들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돌이켜보면 범인을 검거해야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용의자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피의자가 되기까지 과정이 있고 지켜야할 법이 있다. 이어지는 연쇄 살인에 대해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까지 제작되었지만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이춘재가 권력의 그늘에 있거나 막대한 재력가 였다면 은폐의 이유라도 있겠지만 경찰이 이춘재를 두둔해야할 이유나 고의적인 오인수사를 추진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과잉수사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깬 것과 조심하지 않아서 깬 것은 다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주눅 들거나 위축된다면 누가 손해며 누가 좋아할까. 손해는 국민이고 박수칠 사람은 범죄자들이다. 조금만 다그쳐도 과잉수사 운운하며 제2의 이춘재 수사라고 되려 윽박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직에 근무 중인 절대 다수의 경찰이 각자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수혜자는 국민인 것이다.

의사도 수술하다보면 오진으로 사망사고가 나고 베스트드라이버도 교통사고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잉수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수사피해자들의 보상이나 상처를 흐리게 하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국민이 경찰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 스스로가 낸 세금으로 일 시키는 치안담당 공복이 국민에게 충성심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인이 주인의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것이며 격려에 용기 내지 않을까. 이번 사건에서 일부로 전부를 판단하는 편견을 버리고 평소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춘재 사건과 경찰의 위상은 별개다. 경찰관 또한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민의 가족이자 이웃이자 함께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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