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겨야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겨야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07.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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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이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질 때도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 

격언 중 물에 빠진 사람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란 말이 있는데 이는 도움을 주고 되려 낭패를 당한다는 뜻으로 작금의 인심을 보면 도와주려해도 살벌하다.

정말로 길을 몰라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소리 지르며 달아나라고 가르쳐야 당연한 사회, 힘들어 보이는 여성에게 도움주려 했다가 여차하면 성추행 범으로 몰리는 것이나 길거리에서 낭패를 당하는 현장은 못 본 척 하고 지나가야 별일 없는 사회, 오지랖이 넓어 남의일 참견했다가는 고소·고발 당하기 십상의 현실이 요즘 세태다.

고마움을 잊지 말자는 서두가 길었다. 이날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휴전협정을 맺기까지 3년 1개월 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9시 57분 판문점에 마련된 정전협정 조인식에서 남과 북의 대표들은 한마디의 인사말도 없이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채 쌍 방 간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고 나서 일단 쉬자는 정전이었다. 전쟁과정에서 죽여야만 살 수 있는 모든 상황에 결코 웃으며 화해할 분위기는 아니었으리라.

올해로써 휴전 67돌을 맞이하며 아직도 휴전중이지 종전협정이 체결된 것은 아니기에 남과 북의 총구는 서로를 향하고 있다.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니 마치 종전된 것 마냥 느낄 뿐이지 언제든 다시 한판 붙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침략을 선방 놓은 북에서는 오늘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인 국가기념일로 규정짓고 북한 당정군 고위간부, 각계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참배와 국립묘지격인 대성산혁명열사릉 등에 화환을 받치며 전쟁 승리란 기억으로 공산체제유지의 명분으로 삼는다.

반대로 남한에서는 침략당한 6·25를 70주년이라며 국민들의 기억 속에 피해당한 일들을 상기시킨다.

같은 전쟁을 두고 당한 남과 동족상잔을 일으킨 북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우리는 마냥 피해국가라는 것만 기억했지 다행히 민주주의를 지키며 현재의 삶이 유지될 수 있었던데 대한 과정에 대해서는 당연하거나 딴 세상일처럼 여기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그러한 희생에 대해 고마워하거나 베트남처럼 공산화 되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대한 감사의 이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70년 전으로 돌아가 전쟁발발 소식을 접한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히 소집하여 북한의 무력 공격은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라 선언하고, 결의안을 통해 침략행위 중지 및 38도선 이북으로 철수를 요구했지만 이미 활을 떠난 화살이었다.

이틀 뒤인 6월 2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회원국의 북한군 격퇴 참여를 결정하고 같은 해 7월 5일 최초로 스미스 특수부대를 오산전투에 투입한 이래 22개 국가에서 1,957,733명의 연합군들이 참전했다.

사망한 병사만 37,902명, 실종자 3,950명, 포로 5,817명, 부상 103,460 등 막대한 인명피해를 겪었다. 누구를 위해, 왜, 낯선 타국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러야 했을까.

말이 연합군이지 전체 151,129명의 인명 피해 중 미국이 133,996명으로 대부분이었고 병력뿐만 아니라 물자면 에서도 피난민들의 구호품까지 챙기기 바빴다.

이러함에도 정부에서는 도움 받은 지 63년만인 지난 2013년에서야 참전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4조의 2에 의거하여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필자의 이러한 어필이 새삼스럽거나 케케묵은 생각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사람이 어려울 때 도움 받았으면 똑같이 돌려 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부산을 다녀오면서 남구 대연동 779번지에 있는 유엔 묘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누구 총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누굴 죽였는지도 모르는 총성과 포성 속에 태극기를 고지에 꽂기 위해 피를 흘렸던 장면들을 상상하며 묵념으로 예를 갖췄다.

청동으로 만든 군인 16명이 제각기 다른 군복과 자세로 고정되어 있는 동상의 오른쪽에는 “대한민국은 1950년 6·25전란 때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정의의 십자군들이 참전해 준 숭고한 뜻을 길이 전하기 위해 여기 이 탑을 세우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민족은 미국에게 크나큰 신세를 졌고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월남전부터 이라크나 기타 제 3국의 전쟁에 파병하는 지원국으로 상승했다.

이 세상에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건 없다. 가족을 위해 싸워도 몸 사리게 되는 게 사람의 본능일진대 언제 봤다고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에 와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했을까. 총알이 떨어지면 대검을 꽂고 적군의 가슴을 찔러야 내가 살 수 있는 전쟁터, 그런 과정을 전제로 누가 혜택을 보았을까.

당연히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한국의 국군이야 당연히 내 조국 내 강토를 지키기 위해 그렇다 치지만 유엔군 입장에서는 남북 전쟁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내 나라 사람이 중하면 남의 나라 사람은 더 고마운 것이다.

세월이 변했다. 이제는 자유를 지켜준 고마운 전사자들에게 꽃 한 송이라도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 은혜를 돌에 새기는 것이며 원수였지만 동족으로서 함께 공존해야할 운명을 지닌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지난 일을 물에 새기는 섭리를 깨닫는 날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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