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두려워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0.0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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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도 사관의 기록을 두려워한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사초는 실록을 작성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이며 훗날 역사로 기록되는 것인데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귀중한 역사 기록물로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폭군 연산군 때 입바른 소리했다가 죽임을 당하고서도 끝까지 진실을 기록하려했던 김일손의 일화가 역사의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다.

과거를 기록하는 일이 미래의 번영을 좌지우지 하는 건 진실에 기반한 근거가 현실의 난국을 타개하는 고증이 되기 때문인데 최근 한국사를 보면 후손들의 미래가 가히 염려된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필자가 고교 2학년 시절인 1981년도 였다.

공고의 특성상 면학분위기는 거칠었고 한 반에 평균 60명씩 1800명의 전교생이 시끌벅적하던 시절이었으니 교련 훈련부터 각종 실습시간은 말이 조국근대화의 기수였지 공돌이 양성소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학급별로 추려지는 삼청교육대의 선발은 공부하기 싫거나 말썽피우던 일부 학생들에게는 현실도피의 탈출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훗날 그 곳이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한 인격말살의 현장이었는지는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다행히 악대부로 가입한 덕분에 합주를 위해서라도 차출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엊그제 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가 1년이나 지난 시점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모습은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초췌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친구의 일상은 수면제를 먹고 시도때도 없이 잠자는 게 일상이었지만 누구하나 감히 건들지 못하는 존재였다.

삼청교육대는 그렇게 특정 권력이 희생자가 되어 아직도 국가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당한자만 바보로 남아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앞서 1980년 가을에는 광주에서 이사 왔다는 청년이 탄광의 광부가 되어 몇 년간을 필자와 룸메이트로 생활을 하며 말없이 굳센 근로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훗날에야 안 일이지만 눈앞에서 가족의 살육을 목격하고 다시는 광주 땅을 밟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그 험한 탄광 일을 하루도 결근없이 해내는 성실성에 감동한 바 있다. 이 또한 자신의 육체적 학대와 어디론가 도피하려는 동물적 본능에서 회복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위의 두 사건을 직접 체험하고 보고들은 필자는 제 5공화국이 국민에게 얼마나 공포의 정권이었는지 시대적 공감대를 산 바 있다. 언제까지 묻혀 지고 잊어지고 넘어갈는지 두고 볼 일이지만 어제의 전두환 씨의 검찰구형은 참으로 이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점이 부끄러웠다.

걷은 돈으로 나눠주고 챙기고 생색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세금 걷어서 손에 쥐어준 총으로 국민을 학살하고도 멀쩡히 40년간이나 폼 잡고 경호받아가며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나라, 지구상 어느 곳이나 정권의 모순이나 역사의 허구는 있을 수 있다.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도 국제사회에서 비난받고 함부로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과거에 대한 반성의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과오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사형까지 선고되고도 차차 회복되어 전직 국가원수의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면 이해가 가능할까.

작년 가을 청남대를 찾아 단풍 길을 걷다보면 전두환길, 노태우길 등 전직 대통령의 길도 마련되어 국민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자리하도록 작명되어 있고 여전히 곳곳에 독재자들의 필적이 보존된 현판이나 기념식수 등 기억하기 싫은 국민들의 정서와 무관하게 버티고 있다.

이쯤 되면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지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 과연 특정인의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일까. 모름지기 어떠한 결과에는 과정이 있는 것이고 버티는 자는 지켜주는 공범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수면위로 특정인의 독재정권이 아직도 대낮을 활보할 수 있었다면 수면 아래로는 함께 해 처먹은 쓰레기들의 충성심과 대추나무 연 걸리듯 복잡하게 공생해 왔던 먹이사슬의 거미줄에 개나 소나 엮여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온갖 방법의 핍박과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했으니 갚을 것이고 그렇게 고문기술자는 시간이 약이라는 점이 증명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과연 시간이 약일까. 아니면 아직도 당시의 아픔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현 정부가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40년 동안 뭐하다가 다 늙은 구순의 노인에게 죄를 묻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청산도 때가 있는 것이다. 죄를 지어도 넘어가는 전례가 남는다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나 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는 것이기에 어제 있었던 사자훼손에 대한 징역형 구형이 결코 낮은 형량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12·12 사태로 출발한 제 5공화국의 시퍼런 칼날 앞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화염병을 들로 거리에 나섰던 민주화의 일등 공신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 올랐다. 이제 오욕의 과거를 거울삼아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펼쳐져야 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평가 속에 죄 없는 국민들만 같은 피해를 반복하게 된다. 용서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세월이 흘러 부관참시를 해서라도 대가를 치르는 게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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