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1)
옛날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1)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1.2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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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가을 낙엽도 지고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어느 날 평화롭던 마을이 어수선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 동네 토박이로 살던 김 서방 집에서 형제간의 다툼으로 시작됐다.

형 김범무는 동생 김종창이랑 하루가 멀다 하고 목소리를 올리더니 언제부턴가 동생이 형의 멱살을 잡고 형은 사정없이 동생 머리를 쥐어박으며 상황은 단순한 싸움이 아닌 난투극으로 번져갔다.

처음에는 잔소리하며 말리던 엄마 문정부는 남편 김국민의 눈치를 보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일렀건만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형제에게 어미 말은 귓등에도 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집안싸움으로 여기던 판은 허구한 날 와장창 소리가 담장을 넘으니 어찌 주변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평소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을 적절히 활용하던 동네 중매쟁이 매파가 중간에 끼어 말리는 척하며 되려 싸움을 붙이질 않나 차라리 가만두면 둘이서 해결할 걸 형은 이래서 나쁘고 동생은 저래서 나쁘다며 온 동네 소문을 내니 그 매파 호패에 적힌 이름이 정얼론이란 할미다.

지금까지 해온 짓을 보면 호박을 수박이라 소문내서 비싸게 팔아먹고 멀쩡한 양계장에 조류독감이라 떠들어서 애꿎은 닭들의 수난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어쩌랴 매파 입이 워낙 걸러 누구든 건드렸다가는 동네방네 맞았다고 소문내면 뒷감당이 안 되니 자식들 싸움에 끼어든 건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게 김 서방 뿐은 아니었다. 결국 형이 동생을 호적에서 파내야 한다며 아비에게 이르고 매파는 동네 시선이 쏠릴 걸 생각하니 신이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어미는 모른 체 하고 형은 아비에게 이르기를 동생이 그동안 못된 짓을 이래저래 6가지나 하였으니 더 이상 한집에 살 수 없다며 집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대 놓고 울대에 핏줄을 세웠다. 이에 자신은 아무 죄 없다며 형이고 나발이고 이판사판이라는 자세로 어미·아비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 죄를 보면 평소에 개입해서는 안 될 일에 바리바리 쫓아다니며 간섭해 남의 일에 초를 쳤는가 하면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을 만난 것 부터 부패한 쓰레기 청소랑 허물어진 질서 담장을 고치는 일에 게을리 하였다며 저런 동생과는 한집에 살 수 없다고 대 놓고 일러 바쳤다.

듣다 못한 김국민이 아내 문정부에게 이르기를 “대체 집구석에서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모양이냐”며 질책하자 아내가 이르기를 “애는 나 혼자 낳은 게 아니라 그날 밤 그 짓만 안 했어도 이 사단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며 하늘같은 서방한테 대 놓고 반말이다.

처음 시집올 때만 했어도 그리 고분고분하며 평생을 순한 양처럼 살 것 같더니만 몇 년 지나고 나니 이젠 억세기가 옆집 박 서방보다 뒤지지 않을 기세다.

어쨌거나 마누라 말을 듣고 보니 그날이 스멀스멀 생각나기 시작한다. 몇 년 전 그날도 동네 기생집을 다니며 적당한 술집을 찾던 중 그 많은 술집 중 음악과 조명이 요란한 집, 일명 지역감정이라는 방석집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바른 정은 색시가 안 이쁘고 국민정은 술값이 비싸니 역시 평소 다니던 지역감정의 술맛이 최고였다. 웬수같은 자식들을 만들던 그 날도 김 서방의 술잔은 연거푸 들이키는 목 넘김에 몇 병을 비웠는지 모른다. 주안상이라고 차려온 술상에는 과음하지 말라는 안내장과 함께 메뉴판이 눈에 띄었다.

술 종류만 해도 조직주, 인맥주, 금전주, 편법주, 허위주 등 줄줄이 쓰여있고 안주 종류를 보니 혈연과 지연을 적절히 섞어 무치고 양념으로 학연까지 뿌린 부패무침과 무관심고기에 황금연휴라는 채소를 곁들인 방심탕이 추천요리란다.

때마침 브로콜리 비슷한 모양의 브로커가 오늘 마음껏 취할 수 있게 보장 할 테니 아무 염려 말고 마음껏 드시라며 과음을 부추긴다. 어쩌랴 어제 오늘일도 아니고 부어라 마셔라 이미 벌어진 술판에 일단 취하고 보자는 심산이요 무슨 술을 어떻게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 지역감정 집에 들어선 자체가 문제였다. 부어라 마셔라 오늘밤아 새지 마라 마신술아 깨지 마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잔을 비워라. 취할수록 색시들도 이뻐 보이고 취할  수 있다며 김서방 자신에게도 최면을 걸었다.

술 값은 일단 취한 뒤 먹고 튀거나 마누라 한테 가져오라면 될 것이니 이미 제정신을 잃을 만큼 마셨다. 하늘은 빙빙 돌고 방바닥은 벌떡 일어나며 귀싸대기를 친다. 어쨌거나 다행히 술은 취했고 속이 울렁거려 토하니 나오는 게 보은인사요 눈뜨니 방바닥이 토사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당초 깨끗하게 정돈되어야 할 방안이 온갖 지저분한 안주를 먹었으니 먹은 만큼 토하는 것이 당연한 생리현상이다. 소신과 철학을 적절히 섞어 끓인 주관탕과 자질채소에 열정뿌리를 무친 안주였다면 이리 머리가 아프고 냄새나는 토사물을 내뱉진 않았을 것일진대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꼴에 서방이라고 그리 취한 몸으로 집구석에 돌아오니 덜 깬 술에 마누라가 이뻐 보일 수밖에 없었고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가 그리하옵소서로 들려 자빠뜨리니 그날 밤하늘에 천둥벼락이 치고 그리하여 생겨난 큰 놈이 지금 난투극을 벌이는 김범무라는 맏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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