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사람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덕암 칼럼] 사람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3.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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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약 2년 전 필자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 중 하나가 리조트 운영이었는데 서해안의 명소 인천 옹진군 영흥도에 소재한 72칸짜리였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주변에 주차공간이 없을 만큼 호황을 누렸고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는 솔 향기가 향긋했다.

아스팔트 대신 섬주변의 비포장 등산로는 땅을 밟는 느낌이 좋았고 해수욕장이나 섬 구석구석 숨겨진 천혜의 비경은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도심의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거리라 그런지 서울·경기지역의 내방객들이 줄지어 입도하는 바람에 시화방조제는 대책 없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섬에 영흥대교와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고 관련 화물을 적재한 대형트럭들이 좁은 국도를 주행하다 보니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점차 훼손되는 대신 밤이면 붉은 전등만이 송전탑의 위치를 알려주며 발전소 굴뚝으로 내뿜는 허연 수증기는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석양이 아름다운 섬, 이 섬에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4일 인천시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옹진군 영흥도를 인천 에코랜드라는 그럴듯한 영문으로 쓰레기 자체 매립지의 최종 후보지로 확정 발표했다.

2025년부터 수도권매립지를 대체할 인천 자체 신규 폐기물 매립시설의 최종 후보지로 영흥도가 확정된 것인데 즉각 관할 기초의회가 펄쩍뛰며 반대하고 나섰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사업들은 이름만 영어나 색다른 이름으로 갖다 붙이면 달라 보이는가 보다.

화장터를 메모리얼 파크라 하지 않나 세월호 납골당을 416생명안전공원이라 하지 않나. 어쨌거나 천혜의 보물섬 영흥도는 이제 발전소에 이어 쓰레기 매립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점차 멀어지게 될 공산이 크게 됐다.

인천 옹진군의회는 “지난 8일 인천시가 옹진군, 옹진군의회, 영흥면 주민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규 쓰레기 매립지를 영흥도로 지정했다”며 무시하는 처사라고 항변했다.

상황이 궁금한 필자가 지난 1월 방문한 영흥도의 섬 전체 전경은 형형색색의 반대 현수막들이 도배한 가운데 반대 투쟁위원회가 뿌린 유인물을 접할 수 있었는데 2020년 10월부터 주민협의회와 단체장들이 투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주민 전체의 반대로 확산했고 집합금지의 방역지침에도 불구하고 섬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지는 삽시간에 섬 전체로 확산했다.

장정민 옹진군수의 발표를 빌리자면 지난 2004년 영흥 석탄 화력발전소 1·2호기가 가동되면서 서울·경기의 전력을 책임지는 혐오시설로 낙인 찍혔고 년 간 210톤의 미세먼지와 수 백톤의 초미세먼지로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받았다고 강조했다.

54억톤의 온수가 해수로 배출되고 5만 톤의 연탄재를 실은 트럭들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의사를 표명한 주민들은 “쓰레기 매립으로 인한 토양오염 등 환경파괴가 초래될 것이다”라며 강력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지만 사실상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해당 부지인 외리 248-1번지를 포함한 21필지 24만㎡ 규모로 지하 40m까지 파낸 다음 쓰레기를 매립하는 방식이다.

문제 해결 방안은 쓰레기를 안 만들면 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사람이 살면서 이미 충분히 길들여진 만큼 넘치는 생활쓰레기나 음식물·건축 폐기물 등 온갖 쓰레기는 피할 수 없는 인류의 흔적이다.

앞서 어필한 리조트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쓰레기 문제다. 뒷일이야 어찌되든 돈만 벌고 보자는 상술도 문제고 화려한 포장에 눈이 먼 소비자들의 의식구조도 문제다.

먹고 마시는 식품이나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포장재들이 다음날 아침 산더미 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리, 플라스틱, 심지어 도자기나 알루미늄 통까지 주류 포장으로 사용되면서 어릴적 부친의 술심부름을 할 때 들고 다니던 양은 주전자가 생각이 났다.

흰색 종이 테만 있어도 김 한 톨을 사고팔던 시절도 있었는데 종이박스에 비닐포장을 벗겨내고도 플라스틱 케이스에 방습제까지 들어있는 걸 보면 내용 대비 과대포장의 허구에 할 말이 없었다.

점점 익숙해지고 불감증에 젖어가는 쓰레기 양산의 주범은 우리지만 정작 멍들어가는 지구의 토양오염과 후손들에게 뭐라 변명할 것인지 대략 난감이다. 일개 개인이 징징대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만약 각자가 조금만 줄이는 노력을 모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책 없이 쏟아지는 쓰레기는 어딘가는 묻을 수밖에 없고 그 자리가 당장 내 집 밖이라는 것만으로 당연한 듯 버려도 될까.

이른 새벽 거리를 나가보면 쓰레기 수거차량의 처리과정을 흔히 볼 수 있다. 돈 주고 산 쓰레기종량제 봉투에만 담으면 토양오염의 죄는 없어질까.

물론 법률적으로는 그렇겠지만 발생시킨 장본인으로서 일말의 죄책감까지 안 드는 게 당연할 것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심각성을 체험한 바 적어도 줄일 수 있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은 흙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흙의 날’이다. 2002년 세계토양학회에서 토양 보존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하면서 국제연합에서 2015년 세계 토양의 해를 기념하면서 한국에서도 매년 3월 11일로 정한 날이다.

태양광 생산한답시고 멀쩡한 산등성이를 파헤치는가 하면 스키장·골프장 건설은 물론 농지는 농약으로 오염되고 단속의 손길이 소홀한 곳이면 건축폐기물까지 깊은 산골에 버려진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한 인간의 욕심이 돌이키지 못한 죄를 짓는 셈이다. 태어나서 돌아갈 곳은 땅이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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