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기반 없는 무한경쟁은 불확실한 미래
[덕암 칼럼] 기반 없는 무한경쟁은 불확실한 미래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3.2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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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방송사마다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따라 부르기 쉬운 박자에 구성지며 애절한 노래 가사까지 힘들고 감성이 풍부한 우리 국민정서와 맞아 떨어지면서 춘추전국 트로트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현실 속에 마땅히 속풀이 할 곳이 없었던 흥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무명가수 였다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트로트 가수로 성장한 기적 같은 일이 있는가하면 10대 소녀들의 여리고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만큼 고강도 감동을 자아냈다.

심지어 9세 여아의 국악신동 김모 양은 모든 장르를 뛰어넘는 재능과 끼를 보여줌으로써 힘든 국민들에게 신선한 힐링이 되기도 했으며 또다른 김모 양은 특정 향우회에서 지지 문자를 전송해 원치도 않는 과열경쟁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한번 탄력이 붙은 트로트 열풍은 갈수록 식지 않고 너도나도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선보임으로써 향후 트로트가 대중음악의 선두주자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13세의 정동원 군과 커플로 활약하던 장민호·임영웅 등 어느 날 국민가수로 선보이는가 하면 처음 시동을 걸었던 송가인, 나미애 등 무명가수의 진출도 누구든 노래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 번씩 가수들의 리그전이 펼쳐질 때마다 시청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오직 최고 승자만을 가리는 리얼한 진행에 매료되어 최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설자리는 점점 그 명분도 가치도 잃어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 2월 모 방송에 출연한 제법 유명한 여가수는 즐거웠지만 슬픈 무대였다고 말했다.

나름 인지도가 있는 여가수는 트로트 프로그램들로 인해 가요계 중심에 선 점은 높이 사지만 기존 가수들의 설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방송프로그램 편성 자체가 오디션·예능, 그리고 어린 스타 가수를 위한 프로그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여러 프로그램에서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은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수가 가수를 평가하는 자체가 자신의 스타일과 장르에 맞는 가수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모순이라고 밝혔다. 특히 가수도 아닌 개그맨이나 배우들이 나와 가수를 평가하는 대목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라며 트로트계 스스로 자성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필요성을 어필했다.

트로트의 진행 방향이 이렇다보니 배우부터 개그맨, 뮤지컬 배우까지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유명세를 내세워 트로트 계에 뛰어드는가 하면 기존 가수들의 빛바랜 앨범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되고 있다.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시청률과 스타 만들기에 방송이 치중돼 있기 때문에 가수들은 생존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지만 가수라는 이름만으로 여름철 놀고 먹는 베짱이로 인식한다면 이 또한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적 특성상 가무를 즐기는 편이다. 소리로 국위선양을 하는가 하면 한류열풍으로 막대한 유명세를 떨치며 서구지역에서도 한국노래를 따라하는 기성세대들의 열광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한 현란한 조명 뒤에 수 만 명의 무명가수들이 아예 출연 자체를 못하고 지낸 세월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필자가 직접 목격하고 취재한 내용만 논하자면 지난 주말 실물거래가 제법 이뤄지는 경매장을 찾은 결과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버리지 못해 나온 물건들도 있겠지만 일상적인 생활용품 외에도 음향기기, 가전제품 등 헐값으로 경매장에 쏟아져 나온 경매물건의 종류는 다양하고 저렴했다. 한창 경매가 진행되는 도중 신품이나 다름없는 바이올린이 탁자위에 올랐다.

어림잡아도 수 십 만원은 하고도 남을 물건의 낙찰가는 2만원, 그나마 5천원만 더 올리려는 사회자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어느 중년남성의 손으로 넘어갔다.

필요하지 않으면 살 일이 없는 악기 소유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팔릴 때 심경이 짐작 갔다. 얼마 전에는 30인조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 한 명이 밀린 임대료를 내지 못해 명도소송을 당하자 자신이 아끼던 첼로를 헐값에 팔고 대리운전을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유학까지 가서 배운 음악이 어쩌다 이렇듯 처참하게 존립기반을 상실했을까. 어제는 국회 정문 앞에서 시위 중인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자신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 노동자라며 프리랜서로서 하나의 행사가 끝나면 계약이 종료되는 단발성 소득계층이라고 주장했다.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1차부터 4차까지 미술, 순수음악, 무용, 뮤지컬, 국악에는 수백 억 원을 지원하였음에도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제외되었다며 편협한 기준과 차별적인 행태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보와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과 정의당, 공동으로 발표한 회견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로 울려 퍼졌고 너도나도 국회정문 앞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동안 출동한 경찰과의 대립 구도는 봄날 화사하게 핀 주변의 봄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국내 트로트 원조 격인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관계자는 “공장도 없는 데 기술자만 생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 지상주의 프로그램에 약 5만 명도 넘는 아마추어 무명가수들의 현실은 돈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와 자아까지 상실하게 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과연 이대로가 좋은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진정 아픈 자는 아프다 말할 여유도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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