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대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
[덕암 칼럼] 대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5.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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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및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등 동북부지역의 앞바다 120km에서 떨어진 곳에서 규모 8.9의 강진이 발생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14,000명의 인명손실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내며 지금도 일본열도에 공포의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 아무리 첨단 과학을 자랑하고 한때 군사대국 이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사전에 인지했더라면 피해를 다소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고스란히 인류의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2년 폭발해 250명의 사망자를 냈던 콩고민주공화국 니라공고 화산 폭발은 현재 다시 활화산이 되어 도심까지 용암이 흘러들어 극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공항까지 삼킨 용암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이웃 나라 르완다 국경까지 대피했지만 향후 벌어질 사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굳이 외국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숱한 수해와 가뭄에 시달리며 가난과 질병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적이 별로 없었다.

당장의 코로나19가 그러하고 태풍 루사와 매미가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설마 하는 재해로는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만약 현실로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역이 그 피해지역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자연 재해는 인간이 막을 수 없지만 사전에 예방한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재해도 많다.

가령 산불이 그러하고 하천 범람이나 산사태가 그러하다. 후진국형 재난에 속하는 각종 산업 재해도 그러하고 어느 날 땅이 꺼지는 싱크홀도 그러하다.

사전에 예방 점검과 일단 유사시 발빠른 대처가 병행된다면 상당 부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모든 재해는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만큼 너나 할것 없이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오늘은 ‘방재의 날’이다. 1996년 5월 25일 소방방재청이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서 매년 5월 25일을 재난 관련 교육과 홍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방재란 재난이나 재해를 미리 막는다는 뜻인데, 1989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매년 10월 둘째 주 수요일을 세계 자연재해 경감의 날로 지정한 일과 관련이 있다.

어쨌거나 남의 일이면 강 건너 불구경 해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되고 보면 막막하기 그지없는 게 자연 재해다.

오랜 취재를 하다보면 여러가지 자연 현상에 대해 사진도 찍고 기사도 쓰는 전례가 많은데 가장 허무한 게 폭설이나 홍수피해에 대한 기사다.

아침 출근길이면 빙판길을 거북이 처럼 운전하는 차량들이 간혹 접촉사고를 일으키거나 헛바퀴를 돌며 길옆으로 미끄러져 오도가도 못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대단한 뉴스거리다.

출근길 빙판으로 교통정체 극심, 최악의 교통대란 등…. 하지만 오후가 되어 눈이 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는 정속주행이 가능한 차량들로 아침의 속보가 오후에 싱거워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번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홍수피해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골짜기로 몰린 폭우가 상류부터 물이 불어나면서 하류에 있던 주택가들을 덮쳤다.

축사, 주택, 창고, 심지어 경운기까지 모조리 쓸려간 자리에는 흙더미만 가득했다. 살아 움직이는 듯 누런 황톳물은 꿈틀대는 한 마리 거대한 용처럼 이리저리 가리지 않고 강력한 물 폭탄을 쏟아 부었다. 싸움 구경, 물 구경, 불 구경은 돈 주고도 못한다 했던가.

수십 만장의 사진을 찍어 봤지만 그때처럼 섬칫한 광경은 드물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아늑한 안방에서 연속극 보며 감자·고구마 쪄 먹던 공간, 축사의 누렁이가 느긋하게 쉬던 공간이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당사자은 어땠을까.

물만 그러할까. 걸핏하면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지역에 단골 메뉴로 떠오른 산불은 어떨까.

불씨가 건너편 산으로 옮겨 붙는 현상에 멀거니 구경만 할 수 밖에 없는 자연 재해, 죄 없는 들짐승·날짐승과 식물과 곤충들은 한순간 시커먼 재가 되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이렇듯 인간의 작은 실수나 자연적 재해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물론 피할 수 없으면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가능한 선에서 줄인다면 덜 아프지 않을까. 이 세상에 100% 안전한 곳은 없다. 현재의 아늑함을 유지·관리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더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자 숙제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큼은 안전하게 살고 싶어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주변까지 돌아보는 배려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재해만 해도 충분한데 인재까지 더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스스로 편하고자 만든 시설이 우리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발전, 아니함만 못할 것이다.

중요한건 그 어떤 문명의 발달도 자연과 어우러지며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차가운 아스팔트, 콘크리트보다 흙담과 황톳길이 문득 그리운 건 자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님을 알려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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