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현대판 의병은 중소 언론이다
[덕암 칼럼] 현대판 의병은 중소 언론이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6.0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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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세상 이치에는 원인이 있어야 과정과 결과가 있다. 악이 있어야 선이 필요한 것이고 어둠이 있어야 밝은 빛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러한 연유로 부패와 무능은 개선과 창조라는 역설적 원인이 되는 것이며 태평성대에는 민중봉기나 역도들의 무리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국난이 발생했을 때 누가 피를 볼까.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겠지만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일반 백성들이다.

이 시점에서 군인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전란을 막아만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오합지졸이라 왜군과 몽골군에 추풍낙엽이 된다면 그 다음 순서는 어딜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했던가. 군인이 부족하면 날 때부터 이마에 군인이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닐진대 당연히 일반 백성들이 창 대신 곡괭이나 낫이라도 들고 가족들을 보호하는 게 본능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의병이다.

정규군은 아닐지라도 옳은 뜻으로 생겨난 병력이라는 뜻인데 더 말해 뭐하랴. 적으로부터 패배한 다음 상황은 방화, 약탈, 부녀자 강간, 살인 등 온갖 악행들이 당연한 순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능한 임금은 도망치느라 바쁘고 평소 희희낙락 놀고 먹던 병졸과 장수들은 녹슨 창과 늘어진 화살 시위에 본분을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왔던가.

1636년 병자호란에서 몽골군에게 다부지게 당하고 매년 수십 만 명의 부녀자를 타국으로 보내고, 1592년 임진왜란 때도 얼마나 많은 수탈을 당했으며, 1910년부터 일제강점기에도 수 십만 명의 위안부를 타국으로 보내져도 아무 대책도 없이 멀거니 구경만 했던 무능한 남자들이었다.

궁궐에서는 양당 간의 정쟁으로 연일 “통촉 하시옵소서, 전하 아니 되옵니다”만 반복하며 배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던 대신들이 줄줄이 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적어도 7~80년에 한번쯤은 온 국토가 피로 범벅된 전례가 있었다.

수백 만의 동족상잔으로 6·25전쟁이 발발한지 70년, 이제 밝아지는 국제 사회의 질서와 냉전 종식에 대한 인류의 열망으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 한 것 같지만 세상 이치는 강대국들의 계산에 따라 언제,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과거 보다 현재이니 현재 우리가 어떤 의식으로 살아야 지금도 후손들도 사람답게 제대로 잘 살 수 있을까.

과거 처럼 피 터지고 죽네 사네 아우성을 쳐야 의병이라도 창군해서 난리를 막을 텐데 그럴 시대는 지났으니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외부 적 보다 더 무서운 건 안 보이는 내부의 적이다. 가령 이웃 간에 분쟁이 나면 같은 가족끼리는 철저한 아군이 된다.

우리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의기투합은 물론 물불 안 가리고 하나가 되지만 가족 간에 생긴 감정적 불화나 내부적 갈등은 대책이 없다.

모든 이치가 이와 같다. 외침에 대해 동족끼리 뭉치고 적과 싸우는 데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보다 가뭄과 세금 수탈이 심할 때 백성들은 더 괴로워한다. 빙빙 돌릴 것 없이 작금의 현실을 보자.

광복이후 약 70년 동안 과연 한강의 기적과 문명의 발달로 국민들이 행복했는가.

정치는 성숙했으며 빈부격차 해소와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가. 물론 아니다. 갈수록 애·어른이 없고 남녀가 따로 없으며 황금만능주의와 쾌락위주의 사회풍토가 만연해졌다.

최고만 고집하고 절대 다수는 굶주려야 했으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꿈과 희망이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결혼·출산·주택을 포기하는 사회,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누가 감히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공무원 숫자는 늘어나고 한탕주의가 만연한 현실, 2030세대가 예상 밖의 세대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경험이 꼰대의 틀딱(틀니 딱딱)이 되고 복지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게으름으로 차츰 근로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1970년대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치고 배고팠지만 땀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 들어 배불렀지만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시대에 도래했고 모든 게 인터넷이나 자동화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비록 외세의 침략은 없더라도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여 미래지향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 바로 현대판 의병인 중소 언론이 할 일이다. 한국에는 약 25,000곳의 중소 언론사가 있다.

지면,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통합해 소박하고 정담이 넘치는 지역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들의 노력은 큰 나무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마다 각자의 기능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대판 의병에 해당되는 이들의 의무는 참으로 막중하다.

분열된 국론을 봉합하고 애·어른의 질서를 강조해야 하며 남녀의 구분과 도덕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지역의 축제는 물론 애경사와 변해가는 이모저모를 기록하고 남김으로써 모든 발전의 발자취가 되어야 한다.

중앙 언론의 요란한 북소리보다 단아한 대금소리로 삶의 향기를 전해야 하며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아서 올바른 후보를 선택하는 발판과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평소의 노력이 일단 유사시나 전시에 애국심의 기초가 되며 가족과 이웃을 아끼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관군이 못 하면 탓만 할 게 아니라 의병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2010년 5월 25일 행정안전부가 정한 2021년 6월 1일 ‘제11회 의병의 날’을 맞이하여 한마디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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