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탁 치니 억하고! 그때 그 사람들
[덕암 칼럼] 탁 치니 억하고! 그때 그 사람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6.29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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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87년 6월 10일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래 19일 만에 노태우가 발표한 민주화 선언문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한 동기로서 분노한 민심에 항복을 대신한 것이지 국민적 저항이 없어도 그랬을까 싶다.

하지만 호헌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얻어낸 성과이기에 누가 발표했느냐 보다는 어떤 내용이었느냐가 더 중요했다.

검은색만 보다 회색을 보니 하얀색으로 보인 것이다.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와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했던 이력을 갖춘 노태우가 민주화의 투사 마냥 비춰진 당시의 여론은 1987년 12월 1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자나 호랑이나 얼굴마담만 바뀌었을 뿐 초식동물 잡아먹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이미 입었던 군복을 양복으로 바꿔 입는다고 달라질까.

신문·방송의 요란한 북소리에 얼핏 보면 새로운 세상이 온 것 같았지만 이래저래 해 처먹던 아랫것들의 식성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토지정보 알아내서 집만 사도 죽일 놈이 되는 세상이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88년 평화적 정부이양, 언론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및 교육자율화 실시, 정당 활동 보장, 사회정화조치 실시, 유언비어 추방, 지역감정 해소 등을 통한 신뢰성 있는 공동체 형성 등 8개 항으로 이루어진 6·29선언문을 사실상 군부독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당시만 해도 국민들이 순진했다. 각종 악법개폐와 제도개혁에 관한 내용도 없이 새로운 신천지를 맞이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독재의 그늘이 심했다는 반증이다. 6·29선언이 대외적으로 발표될 때만 해도 저러다 전두환 한테 별일 없을까. 마치 암흑시대에 빛을 발하는 혁명가 정도로 비춰졌다.

특히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노태우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당대표직과 대통령후보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며 비장한 각오까지 발표했다.

한마디로 그림 딱 제대로 나오는 장면이다. 지하 밀실에서는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그들이 여전히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 얼른 지나가길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국민적 공분은 명분을 잃었다. 마치 원하는 세상을 얻은 것 같기에 더 진행할 사람도 이유도 없어졌다. 누가 알았으랴. 노태우도 군인이고 다음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5년은 껍데기만 민주화였지 여전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암흑이었다.

군사독재를 배경으로 당선된 노태우는 당선된 다음 해 1988년 11월 23일부터 1990년 12월 29일까지 769일 동안 전두환과 부인 이순자를 백담사에 유배시켰다. 자신을 낳아 준 정권이나 다름없었지만 역지사지가 되고 보니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달랐던 것이다. 국민이 두려워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다음 김영삼 대통령 또한 가가 가라며 둘 다 한데 묶어 차가운 교도소로 보냈다.

30년이 지난 요즘 상황과 판이 달랐을 뿐이지 국민의 분노에 눈치를 본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전임자의 의지와는 달리 국정 지지도를 위해서는 죄의 유무를 따질 게 아니라 그 대상이 누구든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지금의 문재인 정부라고 해도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죄수복을 입고 사면을 기다리는 박근혜나 사면은 꿈도 못 꾸고 포기상태인 이명박의 신세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두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상장, 기념품, 트로피, 같이 찍은 사진, 가문의 영광처럼 큰 그림으로 내 걸었던 기념 촬영 장면은 어찌할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지 슬그머니 내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감춰둘지 두고 볼 일이다. 두자니 죄인과 도매금으로 취급받을 것이고 치우자니 오줄없는 변덕쟁이로 비춰질 것이다. 이래서 권불십년이라 했다.

6·29선언에 국민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세월호로 불붙은 촛불 혁명에 또 한번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벌이는 승리의 파티는 언제까지 갈까.

광복 이후 30년마다 성난 민심으로 뒤바뀐 권력 이동에 정치인들끼리 피바람을 불 게 아니라 이제 국민의 태평성대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대통령 선거가 7개월 남았다. 신문·방송에서는 하마평부터 광란의 굿판이 시작됐다. 둥둥거리는 북소리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일자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미 대통령 선거의 출발점에서 화약총에 방아쇠가 당겨진 마냥 설쳐댄다.

다음 코스는 야당인 국민의힘 경선일 것이고 모든 매스컴은 여야 두 사람으로 압축된 대선주자에다 어설프게 물 타기 할만한 군소정당 1명 정도를 추가해 3명 정도가 국민들 앞에 선택받을 여지를 안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단언컨대 이런 식이면 5년 짜리 대통령 20명이 바뀌는 100년이 가도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대통령 자신과 따르는 신하들의 욕심을 채우고 물러난 다음 무탈한 안위를 위해 정의를 외면해야 하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들까지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세습이나 왕조정치는 아니더라도 이미 빤한 공식 속에 그 어떤 대통령도 교도소 아니면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설 확률이 높다. 용상의 자리는 한여름 땀내 나는 속옷만 입고 평상에 누워있는 것과 같다.

야당과 트집을 찾으려는 언론과 배고픈 백성과 더 욕심내려는 중산충과 너도나도 놀고 먹는 데 습관 된 복지로 게을러진 국민성까지 수천 마리의 모기떼가 되어 뜯어 먹히는 자리다.

진정 나를 불태워 나라를 살린 각오 없이 영광과 우월감으로 욕심낼 자리가 아니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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