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풍전등화 한국 언론의 현주소
[덕암 칼럼] 풍전등화 한국 언론의 현주소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8.2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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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하필이면 25일 새벽 4시였을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과 같은 날과 시각, 물론 우연이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을 단독 처리 이후 25일 새벽 4시 법사위에서도 차수 변경 끝에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이를 전격 통과시켰다.

일각에서는 한국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는 날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에서는 개정안을 집권 연장을 위한 언론자유 말살법이라 규정하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고 여당에서는 법안의 당위성에 대해 정당성을 설명했다.

야당의 반발은 국민 앞에서 협치쇼를 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날치기 한다고 성토했고 법사위원장 직무대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차수를 변경하면서 언론중재법 심의에 들어갔다.

시간이 오전 2시를 넘겨 법안의 일부 내용을 둘러싸고 민주당 법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2시간 가까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4시경 결국 법사위에서 통과된 개정안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퇴장했고 여당은 단독으로 핵심적인 안건들을 일괄 처리했다. 견제는 아예 없었고 일방통행의 입법과정이었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시민단체와 학계·법조계, 정의당 등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법의 제정 과정에 더불어민주당의 독주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제 언론은 고의·중과실 추정조항에서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고의·중과실로 추정한다는 대목에서 회복가능한 손해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도 고무줄 잣대로 재는데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논란 끝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는 삭제되었지만 언론에 대한 심리적·현실적 무게감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미 신문법 개정과 한국 ABC협회의 실질적인 해체에 이어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한국 언론의 변화일수도 있겠지만 암울한 미래의 자화상을 예고하는 경종일수도 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서울외신기자클럽도 그간 대한민국이 쌓아 올린 국제적 이미지와 자유로운 언론 환경이 후퇴하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됐다며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에 대해 25일 의원 총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요구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 현실에 대해 뭣도 모르니까.

뭐든지 그렇지 않느냐며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발언의 당사자가 일반시민도 아니고 여당대표이다 보니 파장은 컸다.

공인으로서 발언을 신중히 해야 함에도 뭣도 모른다고 말한 점에 대해 외신기자들은 민주사회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큰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소탐대실로 이어질 우려를 안고 있다며 전세계 주요국 중 유례가 드물게 명예훼손죄가 언론에 적용되는 점은 이해 불가라는 입장이다.

이제 한국 언론의 현주소는 바람 앞에 등불이 됐다. 국회법 제93조의2를 보면 본회의는 위원회가 법률안에 대한 심사를 마친 뒤 의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1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그 법률안을 의사일정으로 상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측이 제기한 본회의 연기 주장을 수용하면서 본회의 무산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남은 일정을 고려하여 8월내 처리를 강행할 방침이다.

여야는 25일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여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야당의 반발 속에 새벽 4시 법사위에서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당일 본회의에 바로 상정하는 것은 국회법 원칙에 맞지 않다는 게 국민의 힘의 논리가 먹힌 것이다.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여당의 강행, 야당의 반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외형상 드러나지 않는 개정안의 숨겨진 이면에 과연 문재인 정부의 임기만료를 대비한 것인지 언론의 횡포로 인한 피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부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한 피해사례와 방지사유를 공개해야 한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를 차단하는 동기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사회적 공공기구인 언론이 특정 권력에 의해 짜깁기 되어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얼마 전 황희 문체부 장관이 한국ABC협회의 예산 지원 중단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내년부터 협회의 부수 공사 결과를 정부광고 집행 등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정부 산하의 기구를 통해 구독률 등을 조사하고 정부광고도 이에 맞춰 집행될 것이라고 전제하자 사실상 ABC협회는 해체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 언론사의 부수를 과장되게 발표하다 걸린 것이 화근이지만 시장에 의한 규율이 아니라 정부가 평가하는 매체 영향력에 길들여진 언론에 의한 피해는 기업과 국민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이래저래 수난의 시기에 돌입한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적어도 10년 전부터 예정된 재앙의 수순을 묵살한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포털에 기대야 하는 현실, 한국ABC협회에 공인성을 담보받아 정부기관으로부터 광고예산을 받아야 하는 현실, 그나마도 해체되어 공적 기구임을 인정받을 수 없고 민간 언론사 스스로가 인정받는 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 SNS 에 미디어의 근간을 내주고도 모자라 가짜뉴스로 치부 받아야 하는 모든 현실은 언론이 걸어온 장도의 흔적에 대한 결자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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