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눈뜬 소경의 아픔을 아는가
[덕암 칼럼] 눈뜬 소경의 아픔을 아는가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9.08 0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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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이며 술을 더하면 향기가 나고 양과 질을 잘 조절하면 꿀처럼 달다.

말, 글, 술, 잘, 꿀, 달의 공통점은 ㄹ자 인데 우리말을 살펴보면 점하나와 받침하나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니 오묘하다고 할까, 어쨌거나 한글은 문자올림픽에서 내리 우승을 기록하며 세종대왕의 업적은 길이길이 빛나고 있다.

간혹 읽기는 하나 쓸줄 모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쓰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지 난감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키보드 자판만 치다보니 볼펜이나 사인펜, 연필글씨는 어색하고 서투르며 심지어 획순의 순서나 받침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가갸거겨와 아야어여를 배우며 한글을 익히지만 한글을 모르는 성인이 4.6%인 약 200만명에 달한다면 누가 믿을까.

수학에서는 가감승제를 몰라 주변에서 대신해줘야 하는 경우를 포함, 단어로 표현하자면 ‘문맹인’ 이라고 한다.

문자에 대한 맹인이란 뜻인데 눈뜬 소경이나 마찬가지인 국민이 이렇게 많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과거 우리네 할머니 세대, 특히 여성들의 열악한 교육환경 탓이다.

남아선호사상도 문제지만 여자가 배워서 뭐하겠느냐는 구시대적 발상이 한몫했고 먹고 살기 어려웠던 경제적 여건도 그랬다.

오늘은 1965년 11월 17일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제정하여 매년 9월 8일 시행된 ‘문해의 날’로 한국에서는 1989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 1990년부터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문해는 말 그대로 문자를 이해한다는 뜻인데 남의 일로 치부하며 요즘 세상에 설마 하던 사람도 막상 주변에서 문맹인을 봐야 당사자의 아픔과 해결책을 공감할 수 있다.

평소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배움의 시기를 놓쳤고 굳이 일부러 배우려 애쓰지 않는 한 글자를 읽고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긴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 막막함과 절망감은 느껴보지 않는 한 절대 납득하기 어렵다. 필자가 지난 2013년부터 약 5년간 야간학교 사회과 교사를 맡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내세울 일도 아니지만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주간에는 가사노동이나 직장생활을 하고 야간에 배우고자하는 분들을 학습지도하는 일인데 통상 60대 이후 70대 사이였고 성별도 대부분 여성이었다.

연락처나 개인적 과거사에 대해 절대 묻거나 답하지 않는 불문율로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간혹 지각이나 결석을 하는 학생은 엄중하게 학습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그동안 손자·손녀에게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같이 읽어 본적이 있는지, 거리에 간판에 뭐라고 쓰였으며 시내버스 노선에 적힌 지명이 뭔지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특히 가르치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이 지금이라도 배우려고 애쓰는 당신을 보고 얼마나 기특하고 미안하겠느냐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 열심히 배우라고 격려한다.

당당하게 합격하여 고등학교 졸업 자격도 획득하고 사각모자를 쓴 대학생도 되어보라고 용기를 더해 본다.

모르는 영역을 배우려 시도하는 과정에 검은 게 글씨고 하얀 게 종이라는 점 밖에 납득하기 어려운 학생들이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달라진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간혹 연필로 손편지를 쓰실 때면 눈시울을 붉히며 먼저 가신 부모님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살아 계실 때 안부편지 한번 못쓰고 결혼식장 가서 방명록에 당당하게 이름 한번 못 써본 긴 시간들을 회상한다.

가장 슬픈 일은 군대간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지 못해 몇 시간을 먹먹한 가슴으로 애태우던 때를 회상했다. 그리고 한글을 겨우 깨우친 어린 손녀가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올 때면 다른 말로 얼버무리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글을 모른다고 보증서에 이름을 써주었다가 빚만 생긴 일, 영문으로 길게 써진 아파트 이름에 딸·아들 집도 못찾는 일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예상치 못했던 문맹인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이 그런 이들에게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문제를 논했으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게 필자의 논리다. 지금 와서 한글도 모르냐고 핀잔을 줘야할까.

아니면 문맹으로 인한 불편을 인간가치까지 연결시켜 무시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일명 까막눈이라고 적절히 이익을 챙기려 범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나름 한글과 산수를 안답시고 거들먹거리며 가르치려 들까. 물론 모두 아니다. 배려다. 시각장애인이 일반적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점자안내판은 물론 맹인견에 점자 보도 블럭, 승강기, 주차장, 화장실까지 모두 복지차원의 혜택이 주어지듯, 문맹인들의 눈높이 맞는 맞춤형 한글 교실을 열어주고 아직 익히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 많은 인력들 쓸데없이 풀 뽑고 횡단보도 앞에서 깃발 흔들며 서푼 되는 정부 돈 타 먹을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타 필수 불가한 환경에서 안내 역할이라도 하면 어떨까.

문맹 200만,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문맹이라는 이유로 국민재난지원금이란 말이 뭔지도 모른다면 그대로 방치해야 할까.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글을 쓴다는 필자도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가 유행한다.

급변하는 사회, 글을 안다는 건 아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늘처럼 대단한 일이다.

가진 지식을 나눈다고 줄어들 일도 아니거니와 친절한 배려로 안내하는 이웃사랑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 못 배운 게 힘든 게 아니라 못 배웠다고 무시당하는 사회가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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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2021-09-08 15:25:07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