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그날이 오면 그날이 와도
[덕암 칼럼] 그날이 오면 그날이 와도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9.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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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후 1987년 6·10항쟁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다.

중·고교시절과 군복무에 젊은 날을 보냈던 필자의 눈에는 연일 최루탄이 터지던 생생한 그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약 40년이나 지난 일들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대학생들의 집회시위가 신문 1면을 도배했고 어르신들은 학생들이 한다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 한다고 야단이셨다.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열망은 살벌한 군부독재 치하에서도 심신의 안위를 아끼지 않은 열사들이 자유를 위한 목마른 행군을 이어갔다.

전두환 정부의 군부독재가 노태우 정부로 넘어가면서 획기적인 민주화의 완성이 마련되는 듯 했으나 껍데기만 그럴듯했지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에는 기득권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남아 있었다.

자유라는 거대한 물결은 우리 사회에 검증없이 정착하면서 분야별로 방종이라는 기형아를 낳았고 돌이킬 수 없는 흉물들로 자리매김하면서 제도권으로 정착했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 다 접고 한 가지만 짚고 가자면 ‘질서’다. 법전에 나와 있는 질서도 중요하겠지만 자원도, 경제나 군사력도 그 무엇도 강대국 앞에 내세울게 없었던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이 도덕적 위계질서였다.

적어도 10대 학생들이 60대 할머니 머리를 때려가며 장난으로 괴롭히는 일은 없었고 손자뻘 되는 학생들이 담배 꼬나물고 째려보는 일은 없었다.

이 또한 일부에 국한되는 일이고 연령대 별로 무질서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 위·아래가 없고 힘이나 돈으로 가늠되는 세상이라면 이는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 무엇일까.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단어 ‘자유’, 해외여행은 물론 통금으로 밤 12시만 넘으면 경찰의 단속에 무조건 밤새 유치장에 잡혀있어야 했던 시절, 언론은 물론 대중가요까지 모든 면에서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차단되었던 날들, 한결같이 추구했던 것이 그날이 오면 이었다.

새날이 오길 바라며 많은 희생이 있었고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가 이 땅에 충만하면서 각종 부작용과 방종으로 돌변해버린 현실을 보면 그렇게 바랐던 그날이 와도 외려 행복해졌다는 여론은 줄어들고 있다.

반공일로 토요일도 오전에 일하던 시절보다 주 52시간제로 저녁이 있을 거라는 정책이 시행 이후 더 가난해졌고 그 저녁을 보낼 돈이 없어 괴로움과 외로움이 겹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공무원은 늘어나고 먹고 살만한 기득권들은 어찌하든 대체 공휴일이라는 제도까지 만들어 하루라도 더 쉬려고 애쓰는 동안 비 제도권이나 기득권의 그늘이 들어서지 못한 층들의 비하감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중전화기에 매달려 줄을 서야 했던 시절보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다녀도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는 줄어들었고 기차나 버스가 여행수단이었던 시절에서 가구마다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해외여행을 남보다 못간 것이 불행한 시대에 돌입했다.

남녀가 같은 출입구의 푸세식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봐도 괜찮던 시절에서 전세계 1등으로 화장실문화가 발전하자 남녀 구분을 해도 변태기질의 몰래카메라가 등장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는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새로운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모든 게 행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이 충만했고 함께 어깨 스크럼을 짜고 민중가요를 불렀다. 내 눈길이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내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목 놓아 부른 노래는 광화문 촛불로 이어졌고 그렇게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줄 알았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군홧발에 짓이겨지며 입술이 터지고 눈알이 멍들어도 오직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참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가 숲을 지배할 때는 노루나 멧돼지만 희생되었지만 늑대로 주인이 바뀌니 토끼나 다람쥐마저도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해간다.

그 중요한 나라살림의 정승자리는 동네 친구들 떡 나눠주듯 선심쓰는 판이 되었고 오직 민심획득만 추구하는 정책으로 남·여의 역할이 바뀌고 애·어른의 위치가 구분이 없어지며 후손은 멸종의 위기로 가고 있다 때마침 질병이 창궐하여 악취가 진동하니 똥싼바지는 덕분에 물타기 되어 유야무야 넘어가고 이제나 저제나 냄새가 그치길 기다리지만 곧 나아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며 4주간만 더 연장하자던 달램은 지침으로 이어진다.

요즘 들어 하나 둘씩 벼랑끝에 매달렸던 손을 놓는 일들이 수면위로 부상한다. 아니길 바라면서도 이미 1년 전 이날들을 예고했었고 앞으로 가속화되어 올해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경제적 한파가 몰아칠 텐데 어찌할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간절히 기다리던 날이 와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골목길에서 떠들던 아이들 목소리도 동네마다 어른들의 훈훈한 덕담이 오가던 풍경도 사라졌다.

이제 명절도 결혼도 사라지고 장례문화까지도 달라질 텐데 우리 민족의 자산은 어디 가서 찾을까. 혹자는 5천년 가는 국가는 없어도 5천년 가는 민족은 우리였다고 한다.

시대변천에 따른 문명의 발전이 자칫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뿌리마져도 뭉개버린다면 그래서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유가 방종으로 넘치는 나라가 된다면 그땐 누가 어떤 식으로 회복할 것인가.

거리마다 대선캠프의 요란한 움직임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다음 대통령이 대체 얼마나 잘하려고 하마평부터 이렇게 으름장을 놓을까.

그러다 말대로 안 되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뜩이나 병든 나라를 어찌 세울 것인가.

한국이 2015년 9월 15일 첫 기념식을 가진 이래 제정된 6회째 민주주의 날 아침부터 희망적인 소식을 전할 수 없음이 무척이나 아쉽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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