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의 기자수첩] 문자의 위기, 위기의 사회
[윤성민의 기자수첩] 문자의 위기, 위기의 사회
  • 윤성민 기자 yyssm@naver.com
  • 승인 2022.01.03 23: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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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기자
윤성민기자

 “세 줄 요약좀”

어안이 벙벙했다. 일본의 코로나 방역 상황에 대해 담담히 써 내려간 열 줄 남짓한 글에 달린 첫 번째 댓글이었다.

우리나라 성인 48%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6.1권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조사에 비해 2.2권이나 줄어든 수치다.

이들이 책을 멀리하기 시작한 가장 큰 요인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이었다. 범람하는 이미지와 영상콘텐츠가 글의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상과 이미지를 위시한 자극적 콘텐츠들이 우리 가운데에서 시나브로 사유하고 고찰하는 법을 잊게 하고 있었다.

문자가 도태되어가는 급류 한가운데 서 있다. 문자의 도태는 문해력의 하락을 불러일으켰고 어느덧 큰 소용돌이로 변한 콘텐츠에 이번엔 어린 학생들이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2009년 기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5개국(한국,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일본, 핀란드)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던 대한민국은 2018년 조사에서 4위에 그쳤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초 독해력은 5개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문장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축자적 의미 표상’ 정답률은 70.3%에 불과해 5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씁쓸한 결과다.

이런 풍토 가운데 카카오톡이 서비스하는 이모티콘이 어느덧 10주년을 맞았다. 카카오 이모티콘의 창작 수익 규모는 7000억 원에 달했다. 텍스트를 밀어내고 자리하기 시작한 이모티콘은 편의성과 캐릭터성을 무기로 우리 삶 가운데 깊숙이 자리 잡기도 했다.  텍스트를 전송해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카카오톡의 본질은 이미 희미한 듯 하다. 

더욱이 유튜브와 틱톡을 위시한 영상콘텐츠의 끝없는 범람이 글을 더욱 멀게 한다. 자극적인 영상과 간단한 자막은 결코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1초만 흘러도 1초 뒤로 사라져가는 자막 가운데서 그 누가 철학하고 사유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이 같은 풍토를 애써 외면한다. 때문에 이 같은 변화가 더욱 필연적이다. 편리성을 뒤쫓는 교권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PPT로 수업을 준비하고 흥미를 위한 영상자료와 사진 자료로 채워지는 수업 가운데 아이들의 교과서는 갈 곳이 없다.

EBS에서 방영한 6부작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서는 교사들이 겪는 고충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애칭’, ‘가제’ 따위의 단어 뜻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 중 한 교사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말의 뜻을 몰라 수업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고 토로하기까지 한다.

문해 능숙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이 사회생활 전반에서 어려움을 느낄 것은 자명하다. 이들이 사회생활 가운데 갑작스레 어려운 어휘를 마주한다 해도 사회는 검색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계 통신비는 12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1만 1,144원에 그쳤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아야 한다. 유튜브를 꺼야한다. 책과 가까워져야 한다. 읽지 않고 어휘력을 기른다는 말은 곧 먹지 않고 배부르겠다는 말과 같다. 

영상이나 이미지를 위시한 '편한' 콘텐츠의 힘은 분명 지대하다. 그러나 영상의 그 강한 힘에 눌려 반문하고 생각하는 힘이 점차 떨어져만 감을 안타까워해야한다.

생각의 힘은 독서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의 인간다움은 생각에서 나온다. 독서에서 출발하자. 책 읽는 문화가 정착해 사유하고 비판하며 생각하는 이들이 넘치는 건강한 사회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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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2022-07-15 07:37:00
책과 가까워져야 한다. 절대로 마음에 와 닿네요. 책을 읽어야겠어요.

눈꽃송이 2022-01-13 08:31:09
정말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바람 2022-01-12 21:55:06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