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기자수첩] 상처 받은 치유자
[박미경의 기자수첩] 상처 받은 치유자
  • 박미경 기자 miorange55@naver.com
  • 승인 2022.04.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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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기자
▲박미경 기자

우리는 살면서 할 수 없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대표적인 피할 수 없는 고통 중 하나이다. 

1960년대 후반 스위스계 미국인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퀸블러로스는 애도의 5단계를 개발하였다. 그녀는 슬픔을 방치하면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분노의 단계에서 애도 과정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타인을 해하게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후 그녀의 연구를 토대로 여러 가지 이론이 나왔으며 정립된 단계는 다음의 다섯 단계로 요약된다. 이를 애도의 다섯 단계라고 한다. 

먼저 슬픔을 당해서 첫 번째 겪는 과정은 부정이다.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자연사인 경우도 그렇지만 사고사나 자살,연인의 일방적인 이별통고의 경우에 극단적으로 부정의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두 번째 과정은 분노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함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떠나버린 상대방을 원망하고 원인이 된 사건 자체에 대한 화가 치밀게 된다. 이 경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이 상태가 오래 가서 화병이 되어서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경우도 많이 있게 된다. 

세 번째 과정은 타협이다. 슬픔에 처한 당사자는 차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는 지를 깨달으면서 주변을 다스리게 된다. 이 단계에서 아주 혼돈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상실의 영향에 대해 깨닫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상대가 살아있는 상태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체념의 자세도 배우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이다. 이제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자 한다. 분노와 부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좀 쉬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의 당사자에게 일어나라고 하거나 힘 내 라고 섣불리 충고해서는 안 된다. 다정하게 지켜봐주고 묵묵히 들어주는 게 최고의 격려가 된다. 당사자는 반드시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신을 도와줄 자원이 된다. 이때 우울증으로 가게 하지 않게 도와야 한다. 우울증에 빠지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불면증에 빠지고 식욕도 없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 단계가 수용 단계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로소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수용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가능한 빨리 도달해야 할 단계이다. 상실에 처한 자신을 대면하고 닥쳐올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그동안 경험했던 상처들을 다독이며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적당한 운동과 휴식, 독서, 명상, 상담, 창조적인 활동 등은 슬픔을 빨리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슬픔을 겪고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실행한 다음에 인간은 조금 더 강해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이제 슬픔을 겪고 극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쥔 셈이다. 만약 나에게 슬픔이라는 강이 도달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애도의 단계들을 거치고 저 건너 편 강으로 수월하게 도달하기를 권한다. 강가에 서있는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아름다워져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던 중 대학 강단에서 가르쳤던 예전 제자이자 진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한국화가 이상용님 부인의 부고를 들었다. 국악 하던 딸이 이 년 전 세상을 떠나고 ‘익숙한 병명의 괴물’을 숨기고 투병하다가 조용히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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