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지만, 고약한 변덕꾸러기 ‘돈’
탐나지만, 고약한 변덕꾸러기 ‘돈’
  • 경인매일 kmaeil@
  • 승인 2009.07.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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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인간의 심리를 너무도 잘 꿰뚫어 본다. 사람들은 자기를 슬쩍슬쩍 미워하다가도 십 년 동안 헤어졌던 임보다도 더 반긴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저 때문에 더러 목숨까지 건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다.”‘한국학의 석학’으로 불리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와 곽진석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신작 ‘한국인의 돈’(이숲 펴냄)에서 살펴본 ‘돈의 성질머리’다.이 책은 화폐의 역사, 돈과 관련한 낱말, 돈의 쓰임새, 돈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남긴 인물, 예술작품 속의 돈 등 한국인의 돈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세상 구석구석 돈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돈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은 인간을 비롯한 세상 만물도 함께 이야기하는 셈이다.‘도대체 돈이 무엇이관데…’를 주제로 탐구하는 이 책의 핵심은 돈의 성질을 넌지시 살펴본 부분에 들어 있다. 저자들의 표현대로라면 돈은 사람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고약한 변덕꾸러기다.“짜고 맵다. 독하고도 구리다. 모질고도 얄궂다. 간사하고도 교활하다. 요상하기는 천 년 묵은 백여우고 독살스럽기는 만년 묵은 도깨비다. 사람의 마음이며 소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라면 가고, 멈추라면 내닫는 고약한 심술퉁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돈을 업신여기거나 꺼리지 않는다. 어차피 돈이란 모순적인 존재다. 모질고 고약한 성질에도 누구나 탐을 내는 이유는 돈이 삶에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낳는 폐단은 쓰는 사람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돈은 폐(幣)가 되기도 폐(弊)도 될 수도 있다.“화폐의 폐(幣)는 폐단의 폐(弊)와 헷갈리기 쉽다. 작폐(作弊)한다면 남에게 폐를 끼치고 손해를 준다는 뜻인데, 바로 그 폐(弊)가 화폐의 폐(幣)하고 쌍둥이 형제처럼 닮았다. 귀한 폐(幣)라야 할 돈이 오늘날 사회에서 이웃끼리, 심지어 가족끼리 폐악(弊惡) 폐(幣)의 못된 구실도 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하자.”책에는 노(老)학자와 중견 국문학자의 해박한 지식과 해학적 입담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그토록 풍성한 정보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았으니 무릎을 칠 만하다.책에 풀어놓은 ‘구두쇠 열전’을 보자. 저자들은 굳짜, 노랑이, 짠돌이, 보비리, 기린주머니, 자린고비, 수전노 등 수많은 유의어가 있는 ‘구두쇠’의 어원을 ‘굳다’의 ‘굳’과 연결어미 ‘우’, 인칭 접미사 ‘쇠’를 합한 것으로 풀이한다. 금전에 대해서도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뜻이다.다소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구두쇠에 반해 노랑이는 ‘싹수가 노랗다’는 표현에 쓰이듯이 ‘빛깔 중의 망나니’라 할 만한 노란색을 갖다 붙인 꾀죄죄한 표현이다. 이렇게 돈에 인색하다는 것은 때에 따라 미덕도, 놀림감도 될 수 있다.저자들이 독자에게 권하는 ‘돈에 대한 철학’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돈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오늘날의 삶에서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수단이어야 할 돈이 어느새 목적이 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다시 한번 되새겨 준다.저자들은 해답을 조상이 만들었던 엽전에서 찾는다. 겉은 둥글지만 가운데 각진 구멍이 뚫린 엽전은 ‘공방(孔方)’의 뜻을 품고 있다. “원활하고 둥글게 온 세상을 돌고 돌되, 떳떳하고 반듯하게 제 구실을 하라”는 것이다.24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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