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 헌신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 헌신
  • 원춘식 기자 wcs@
  • 승인 2009.08.18 2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반세기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있던 3김(金)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김 전 대통령은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낙선했으나 97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정적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아 왔으며 80년에는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구명운동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어냈다.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고 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해 네번째 대권에 도전했다.이듬해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 공조를 앞세워 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세계적인 평가를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