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산악회(民山)의 역사와 저력...김기현 당대표 선거·윤석열 대통령 선거·YS 대통령 선거
민주산악회(民山)의 역사와 저력...김기현 당대표 선거·윤석열 대통령 선거·YS 대통령 선거
  • 정웅교 기자 210ansan@naver.com
  • 승인 2023.03.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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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와 박태권 회장 등 민주산악회 임원진들이 2023년 1월 24일 김기현 후보 캠프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와 박태권 회장 등 민주산악회 임원진들이 2023년 1월 24일 김기현 후보 캠프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경인매일=정웅교기자] 민주산악회는 80년대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민주화운동과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선에서의 김영삼 대통령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는 역사성•상징성과 자부심에서 기인된 강한 응집력과 거대 조직력을 바탕으로 40년 이상 각종 선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2021~2022년 대선 기간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국민의힘 대선 선대위 조직총괄본부 民山본부로 활동하면서 임명장 5만여 개를 발행하는 등 전국 조직을 총가동하여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또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 기간에는 김기현 당대표 후보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에 소속되어 2개월 동안 20여명이 상근하며 임명장 3만여 개 발행과 100만여 명에 대한 SNS 활동 등으로 김기현 당대표 후보가 과반 득표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민주산악회 임원들은 박태권 회장, 김무성 상임고문, 이복리 부회장, 정상화•정웅교 총괄본부장, 원혁재 조직본부장, 최경순 여성본부장, 한지엽 직능본부장, 전미숙 대외협력본부장, 김천규 총무본부장, 강대욱 홍보본부장, 홍병태 행정실장, 진민경 미디어본부장, 김학채 조직위원장, 박순모 정보과학위원장, 이경록 산업위원장, 이혜숙 안산시본부장, 김은영 홍보위원장, 박영숙•양승희•이문영 여성위원장, 권재한 보건복지위원장, 박대종 특별위원장, 박종웅 장애인위원장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태권 민주산악회 회장(헌정회 부회장)과 임원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캠프 해단식 날인 2023년 3월 9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기념촬영.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박태권 민주산악회 회장(헌정회 부회장)과 임원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캠프 해단식 날인 2023년 3월 9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기념촬영.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민주산악회 광역시도 협의회장들인 이일희(서울시), 장진교(경기도), 이근명(인천시), 최문돌(부산시), 이상용(울산시), 김수영(경남), 임상완•채대희•이필용•권대혁(충청권), 문종열(강원도) 등도 지난 대선 시부터 활동해 왔으며 이들 산하에는 시군구 지부장들이 있다.

앞으로 민주산악회는 보수진영의 핵심 단체들 중 하나로서, 가짜뉴스•편파뉴스 양산 언론 퇴출운동, 불법 노조활동 퇴출운동, 금융기관 폭리 추방 운동 등을 전개하는 한편 윤석열 정부의 든든한 지원세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한편 민주산악회(약칭 민산)는 1980년대 초 전두환 5공 군사독재정권 시절 김영삼(YS) 전 신민당 총재 등 YS계 인사들이 당시 안기부와 경찰 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산행을 가장해서 산에서 모임을 하면서 탄생되었다.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1차 가택연금(1980년 5월 20일~1981년 5월 1일)이 끝난 직후인 1981년 6월 9일 군사정권의 눈을 피해 몇몇 동지들을 규합하여 산에서 첫 민주산악회 공식 모임을 가졌다.

그후 1982년 11월 민주산악회는 조직체계를 갖추었는데 고문에 김영삼, 회장에 이민우, 부회장에 최형우•김동영•김덕룡•함기환, 운영위원에 최형우•김동영•김덕룡, 산행대장에 이우태 등을 선임하고 전국 시•도지부와 시•군•구•선거구지회 결성을 추진하기로 하고 전국 조직망을 확대해나갔다.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 민주화 수용을 요구하는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인 끝에 김영삼 전 총재는 전두환 정권의 2차 가택연금(1982년 5월 31일~1983년 5월 30일) 해제를 끌어내고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설 수 있었다.

민주산악회는 YS의 23일간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1984년 5월 18일 DJ의 동교동계와 함께 결성한 정치결사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로 발전했다.

YS 상도동계 중심의 민주산악회, YS 상도동계와 DJ 동교동계의 연합인 민주화추진협의회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양대축이었고 이 두 단체는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에서 신당 돌풍을 일으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창당의 토대가 되었다.

민주산악회의 전성기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국민당 후보 등이 출마한 1992년 대선 기간이었다.

1992년 민주산악회는 대선을 앞두고 상임고문에 김영삼, 고문에 김명륜, 회장에 최형우, 수석 부회장에 황명수, 상임부회장에 김덕룡, 부회장에 서석재•서청원•김동주•신영균•김현규•황병태•이우태 등 14명, 본부장에 박태권을 선임하는 등 중앙본부를 큰 정당 규모로 확대하였다.

또 1992년 민주산악회는 전국 15개 광역시도협의회와 268개 시•군•구•선거구•특별지부 결성과 회원 배가운동을 추진해 1992년 12월 18일 대선까지 회원이 270여만 명에 달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당선에 공조직인 민자당과 대등하게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후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산악회라는 사조직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형우 민주산악회  회장에게 지시해 민주산악회를 해산했으나 전국 대부분의 광역시도 협의회와 260여 시군구 지부가 매월 정기 산행을 하며 조직이 가동되었다.

민주산악회 임원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캠프 2023년 3월 9일 해단식 직후 여의도 한 커피샵에서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민주산악회 임원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캠프 2023년 3월 9일 해단식 직후 여의도 한 커피샵에서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사진=민주산악회 제공)

현재도 민주산악회는 명칭을 그대로 쓰거나 변경해서 활동하고 있는 지부가 전국적으로 170여 개 지부, 회원이 20여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산악회 재건은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후보가 확정된 이후인 11월 27일, 민주산악회 92년 대선 전후 당시 간부들이 최형우 전 민주산악회 회장 자택을 방문해 최형우 전 회장의 동의를 받은 후 본격화되었다.

이날 박태권 (전 충남지사•국회의원•문체부차관), 노승우 (전 재선 국회의원), 정웅교, 정상화, 한지엽, 김천규 등 과거 1992~1993년 당시 민주산악회 임원진들이 최형우 전 회장 자택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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