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詩]별을 보고 싶어 떠난 시인
[弔詩]별을 보고 싶어 떠난 시인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06.14 09: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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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연 선생 영전에 부쳐

구연(丘衍) 김치문(金治文) 선생님!
글을 다스리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준 그 이름
너무 버거워 구연이란 필명을 썼지요
42년 서울 중구 신당동 외가에서 태어나
은행원 아버지 따라 평양에서 살다
세 살 때 생긴 소아마비로 늘 오른발이 조금 불편했지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덟살 6.25 때 외할머니 따라 나선 피난길 
대구에서 자라다 양구 고모집에서도 살고
고3 때 맞은 4.19 데모 주동으로 퇴학, 구속, 석방…….
격랑의 파고와 산맥을 넘어온 당신은 
열아홉 혈기로 가을 설악산 대청봉 오르다
조난을 당해 죽음 문턱에서 겨우 살아났지요.

스물넷에 갑년 문학처자 정송화와 혼인하고
평생 직장 대한제분에 입사하며 인천에 터잡았지요
7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화가 당선되고 
74년 동시 「꽃불」로 새싹문학상 받고
78년 연작동시 <빨간댕기 산새>로 소천아동문학상 받으며
그 여름 올랐던 성인봉, 백록담처럼 이름 높은 아동문학가로 우뚝 섰지요.

문우들과 걷던 <방울나귀>가 쩌렁쩌렁 방울 소리 울리던 밤
『너랑 어깨동무하고 별을 바라보고 싶다』던 당신은
유월 열 이틀 늦은 밤 서재 의자에 앉아 별을 바라보듯 조용히 떠나셨네요.
오래 전 만나러 갔던 권오순, 권정생 선배가 하냥 그리워져서
작별의 인사도 없이 스르르 그리 떠나셨나요?

『꽃불』, 『빨간 댕기 산새』, 『분홍단추』, 『가을 눈동자』, 『그리운 섬』,
『사랑의 나무』, 『아이와 별』, 『별빛과 눈물』, 『나무와 새와 산길』, 
『행복한 풀잎』, 『맑은 시냇물』, 『은하수와 반딧불』, 『별이 된 누나』, 『그 바다 그 햇빛』
당신이 동심으로 한땀 한땀 수놓아 곱게 지은 동시집 이름입니다 
『자라는 싹들』, 『마르지 않는 샘물』, 『동쪽에 집이 있는 아침』, 『별명 있는 아이들』,  
『누나와 별똥별』,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산다』, 『붉은 뺨 사과 얼굴』
당신이 정성으로 한올 한올 짜올려 오래도록 기억될 동화집 이름입니다.

당신의 대표작 「강아지풀」, 국어책에 실린 동시 「빈 나뭇가지에」
들길을 가다 문득 강아지풀 보고 빈 나뭇가지 보면
이른 봄 인천역 앞 동화마을 찻집 앞에서 헤어질 때
오래도록 손 흔들어 주던 따뜻한 정 잊을 수 없어
『빨간 댕기 산새』를 그리며 『별빛과 눈물』로 당신을 구연(口演)할 겁니다.

▲필자와 김구연 아동문학가
▲필자와 김구연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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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경 2023-06-14 10:38:57
김구연 선생님에 대해 이 조시 한 편으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낱낱이 기억해 주는 한 사람이 옆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김구연 선생님께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고, 나의 전부를 인정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문학인으로서 가슴 뿌듯한 삶을 살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험난하고 거친 인생길을 그 누구보다 곱고 정갈하게 살아내신 김구연 선생님의 일생에 존경을 표합니다. 김구연 선생님과 같은 분들 덕분에 이 험난한 세상이 고울 때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됩니다. 영면에 들어가신 김구연 선생님의 삼가 명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