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천년만년 젊은 것이니
[덕암칼럼] 천년만년 젊은 것이니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6.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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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인간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생물체도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당연하다.

부처님이 말하는 인생 팔고를 보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인 생로병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이고,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생기는 고통인 구불득고, 인간의 마음속에 든 다섯 가지의 불균형인 오온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책 성경 66권 안에는 너라는 사람은 어떠한 존재이며, 왜 죽어 가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약 3,500년 전 모세에 의해 처음 기록된 성경은 그 이후 약 1,600년에 걸쳐서 성경 66권이 완성되게 된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노정이 기록되어 있다.

더 가까운 시점으로 돌아와 보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시로 읊은 이가 있으니 1536년 태어나 1593년 57세의 나이로 작고한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이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럽거늘 짐 조차 지실까. 어제는 2016년 12월 30일 보건복지부가 정한 법정기념일로써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매년 6월 15일인데 이 날만 노인들 살피고 나머지는 학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오죽하면 이런 날을 정해 범국민적으로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심을 유도하였을까.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며 누구든 늙어지면 피할 길 없는 것이 생로병사이기 때문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 및 관련 부처 주관으로 제1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으니 올해 들어 7년이다. 한국사회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7년에는 14%에 이르러 고령사회를 구성했으며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그 시점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법률적 근거를 보면 노인복지법 제6조 4항에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예방의 날로 지정하고 취지에 맞는 행사와 홍보를 실시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학대 받는 사람은 노인일진대 누가 학대를 하는 걸까.

최근 언론보도를 인용하자면 학대 행위자 중 배우자가 35% 해당되며 이는 빠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데 노년층이 많아지다 보니 통계도 따라 올라가는 현상인 것이지 학대가 늘어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노인부부 가구 비중이 2008년 47%에서 2020년 58%로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에 이어 아들이 28%, 요양기관이 18%, 딸이 8%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이 88%, 여성이 12%로 나타나 늙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학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한 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 1만9,552건 중 35%가 학대로 나타났으니 6,800건이 학대 사례로 판정됐다. 물론 신고 되지 않은 건수까지 더하면 상당한 학대가 은폐되어 괴롭게 사는 노인이 많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서적, 신체적, 방임, 경제적, 성적 학대 등 다양한 방법의 학대가 있는데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서럽고 괴로운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요양병원의 관리 실태를 보면 경악을 금할 길 없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구강 내 섭생사건은 물론 요양원 입소 한 달 만에 멀쩡하던 노인이 반송장이 되었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종합병원의 간호조무사나 중환자실 간호사, 요양원의 간병인들의 근무 실태를 보면 안타깝다 못해 숭고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혹자는 돈 버는 게 다 그렇지 않겠느냐는 말도 하지만 간병은 수익으로만 전제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간병 대상자를 희롱하여 금품을 갈취하거나 가족들도 모르게 학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를 보고 전체를 싸잡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실하게 근무하는 간병인이나 간호조무사들의 노고가 폄하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험하지 않은 일은 역사적 고증이나 판례 또는 사례를 들어 정보를 정리한다.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사회적 가치 상승의 여지가 있을 때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노인학대에 대한 오늘 글은 수년 간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것인데, 사람이 늙으면 사리 분별력도 떨어지고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약해져서 또렷함이 현저히 상실된다.

다시 말해 그러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라 당사자도 모르게 기억력도 떨어지고 충분히 해낼 것 같았던 일들이나 동작이 쉽지 않기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노인학대를 방지하는 첫 걸음이다.

걸음마를 배울 때, 늙어 다시 걷기 위해 보행기가 필요하며 어릴 때 외출 시 타고 나갔던 유모차가 늙어서 폐지 줍는데 다시 필요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못 하고 대·소변도 부모가 치워주었데 늙으면 이 또한 대·소변을 남에게 맡겨야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말을 하면 독자들은 다 아는 얘기라며 넘기거나 자신은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때는 그리 멀지 않았음을 전제한다. 늙을 때 늙더라도 젊은 때 즐기고 행복하면 그만인데 무슨 청승이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노인학대예방의 날을 맞이하여 처가·시가 할 것 없고 내 부모·네 부모를 떠나 남의 부모까지 챙겨 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처럼 인정머리 없고 매몰찬 국민이라면 그러는 당사자는 영영 늙지 않을까.

처녀가 시집 안 간다거나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거나 노인이 빨리 죽어야지라는 3대 거짓말은 지금도 여전하다. 노인은 자신이 죽어야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기에 병원비와 약값, 시간 할애,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미안함을 크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며 살고 싶다고 살겠는가. 물론 병원이 당장은 구명에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갈 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는 것이다. 굳이 학대하지 않아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종착역에서 서러움까지 더한다면 한 평생 살았던 이 땅의 마지막 추억이 너무 씁쓸하지 않을까.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산자들의 따뜻한 배웅이 당연하듯 사회 전반에 전해질 때 너도 나도 삶을 마감할 때 덜 불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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