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잊히는 미풍양속
[덕암칼럼] 잊히는 미풍양속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6.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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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는 것 자체가 촌스럽거나 어색하리만치 민망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누가 감히 아니라 할 수 있을까마는 설날과 추석도 노는 날로 여겨지고 국가 기념일이나 기타 대체 공휴일도 노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24절기와 미풍양속의 의미가 담긴 단오를 논하는 것은 지면에 철판을 깔고 독자들이 보건 말건 무디어진 마음으로 적어야 할 정도이니 그래도 논객의 사명감으로 오늘은 단오에 대해 알아보자.

대략적인 내용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넘칠 만큼 방대한 자료와 사진은 물론 각종 행사까지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생략하고 적어도 22일은 음력 5월 5일이자 수릿날·천중절·중오절·단양 등으로 불리는 한국의 명절 중 하나라는 점은 확실하다.

동양철학에서도 알 수 있고 지리적 특성상 한반도 남쪽에서는 추석을 북쪽에서는 단오를 명절로 생각했다. 연간 기념일을 보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서양의 축제일이 뒤섞여 세대 간의 이견을 더하는가 하면 과거 1차 산업 중심의 한반도가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연환경과 관련된 일정은 아예 명절 취급도 못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의 조화까지 함부로 여길 수는 없는 법, 예로부터 3월 3일, 5월 5일, 6월 6일, 7월 7일, 9월 9일 등 월과 일이 겹치는 날은 양기가 가득 찬 길일로 여겨왔는데, 그 중에 5월 5일을 가장 양기가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 명절로 지내왔다.

단오를 최고로 치는 의미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인데 현대사회에서 단오가 과연 어떤 대접을 받는 날일까. 되짚어 보면 지금도 강릉지방에서는 남대천의 넓은 공터에서 단오굿판이 전승되고 있으나 경우 명맥만 유지할 뿐 점차 잊혀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원 김홍도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여인들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단오의 전형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이날 하루 마음껏 놀이를 즐기며 약초를 캐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창포주나 약주를 마셔 재액을 예방했다고 한다.

또한 쑥으로 인형이나 호랑이를 만들어 문에 거는 풍습도 있는데 아마 약초·창포·쑥 등의 강한 향기와 약성으로 재액을 쫓았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현재도 강릉단오제는 매우 풍성한 축제 중 하나다.

그네뛰기·씨름·탈춤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가 병행되는데 시내 곳곳에 펼쳐진 상인들이나 문화축제 관련 행사들이 더욱 강릉을 아름다운 곳으로 알리고 있다.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등록된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시대적 변천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소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은 물론 모든 정체성까지 혼돈의 세계와 뒤섞여 정작 지켜야 할 얼과 혼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비단 단오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오천년 민족의 저력에서 빚어진 자산은 서구 문명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구태에 젖어 케케묵은 과거에 집착하자는 게 아니라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과 개선의 여지가 있어 버려도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문명만 발달할 뿐 무형의 영적 자산가치는 복구되기 어려운 것이다.

미풍양속의 대표적인 상징은 예절이다. 살아있는 사람 사이에는 화합과 인애 사상이고 사망한 자에게는 생전의 업적과 영혼에 가치를 심어 제사를 지내고 예를 올리는 것인데 조금씩 잊히다 이제는 거의 잊힌 상태다.

눈앞에 보이는 것, 당장 입에 들어가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에 편안한 보금자리만 있다고 다 살아있거나 잘 산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중 가장 아래 단계인 ‘생리적 욕구’충족에 만족한다면 동물과 뭐가 다를 것이며 자아실현을 위해 지식을 배우고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민족의 발전을 도모하는 뜻이 공감되어야 부국의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불과 70년 전만해도 전쟁이 휴전되어 헐벗은 대한민국이 근대화의 물결에 힘입어 30년 만에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루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급작스러운 성장을 보이는 듯했으나 검증되지 못한 서양문물이 조선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허리케인처럼 휩쓸어 버렸고 그나마 남은 미풍양속은 1990년대 들어 군부종식과 함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예 사라진 우리의 민속경기와 각종 놀이문화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쥐불놀이나 복조리 사라고 외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고무줄과 공깃돌만 가져도 충분히 지혜와 순발력은 물론 친구들과 화합할 수 있었던 시절.

단순히 놀이문화 뿐만 아니라 지방마다 다른 민요, 풍습, 문화 등 많은 자산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지역별로 문화원이 명맥은 지키고 있으나 이 또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다 보니 일시적으로 보여주기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것은 우리가 지키고 함께 공유하며 생활 속에 접목되어야 핏줄에 대한 자긍심도 지켜지는 것이다. 필자가 (사)대한생활체육회를 설립하여 남북한과 민족경기를 꿈꾸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는 것이며 비록 정부가 다르고 서로 총구는 겨누고 있지만 한민족의 공감대는 70년 세월이 지나도 쉽게 화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말과 글, 피부색, 역사와 문화만 같다고 한민족은 아니다. 통일시대를 위해 정부가 단체들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활동 중이지만 문명의 발달 외에 소중한 미풍양속 중 그 어느 것 하나 지켜내지 못한 채 남과 북이 하나 된다면 정작 공감대를 이룰 소재가 아쉽지 않을까.

40개 종목의 민속경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팀의 화합, 지혜와 용기, 상대방에 대한 배려까지 담긴 우리 민족만의 고귀한 자산이다. 물론 단오 같은 미풍양속 또한 전세계 어떤 국가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한민족만의 명절이지만 현대인들이 이를 무시한다면 훗날 후손들에게 물려준 명절이나 풍습은 아예 흔적조차 찾지 못할 수 있다.

땅이나 건물, 통장 계좌에 잔고도 중요하지만, 무형의 지적 재산은 우리 민족만이 가진 장점이자 찬란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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