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산자가 망자를 편파하다
[덕암칼럼] 산자가 망자를 편파하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7.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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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농가에서 귀하게 아끼던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친다는 뜻의 속담은 사전에 대비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피해를 방심한데 대해 지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재난 정책을 보면 더도 덜도 없이 가장 적절한 말이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인명피해가 속출한 홍수사태도 그렇고 충북 제천 사우나 화재사고,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등 대형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사고가 날 때만 온갖 요란한 구호와 자극적인 단어가 동원된 뉴스들이 판을 칠뿐 얼마 못가 시간이 약인 사례가 한둘 이었던가.

그리고 지난 2020년 7월 23일, 부산광역시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되어 3명이 사망한 사고, 작년 서울 한복판 강남일대가 침수되어 물난리를 겪은 바 있으며 올해도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비슷한 격언이 또 있는데,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 무슨 약을 준들 도움이 될까하는 의미에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은 2013년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해양사고를 계기로 연안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제정된 ‘연안안전의 날’이다.

연안사고 예방 활동 참여를 촉구하고 안전의식을 확산하기 위한 기념일인데, 연안에서 발생하는 인명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바 있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민주화의 열풍이 불면서 국민들의 의식도 한층 더 향상되었고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주 5일제 정착 등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연안을 중심으로 한 체험캠프 활동, 관광, 해양스포츠 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다.

하지만 수요 대비 공급 부족으로 낮은 수준이 문제가 되었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즈음 2013년 7월 18일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에서 운영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고등학교 2학년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지역은 수영금지구역이었음에도 강행한 체험캠프가 참사를 빚은 셈이다. 총 80명이 교관의 지시에 따라 다시 바다로 들어갔고 이때 파도에 휩쓸려 수심이 깊고 물살이 거센 갯골에 빠진 뒤 5명의 학생이 실종되었다가 관계당국의 광폭 수색끝에 모두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나마 생존한 학생들도 서로 인간띠를 형성하여 겨우 살아났던 사건인데, 당시 사고의 가장 치명적인 요인으로는 갯골이 주목받았다. 서해안은 지리적 특성상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썰물이 빠지고 나면 드러나 보이는 갯골은 갯벌의 골짜기를 줄인 말이다.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서 동시에 평면으로 물이 빠질 수 없으니 어느 한쪽은 기울기 마련이고 그렇게 오랜 세월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만들어낸 자연스런 골짜기인 것이다.

지반은 골이 파져 있지만 물이 차면 수면위로는 모두 평면이니 수면 아래 골짜기를 알 수가 없는 것이며 서해안의 특성상 수질의 탁도가 심하다 보니 바닥을 볼 수 없어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점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필자 또한 출·퇴근길에 갯골의 형성 장면을 수 백 번이나 볼 수 밖에 없어 자연의 오묘한 생성과정에 감탄을 공감하였지만 자연이 무슨 죄가 있을까. 이를 살피지 않고 무리한 체험을 강행한 사람의 무지와 오만이 부른 사고였다.

각종 기념일이 정해 질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 필자가 ‘연안안전의 날’을 강조하는 이유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해병대 캠프를 대상으로 웃고 즐기며 오락이나 체험 방송프로그램의 일약스타에서 활동하다 하루 아침에 모든 관계자들이 한꺼번에 입을 닫고 외면한 현주소에 대해 지적하고자 함이다.

당초 대한민국에서 운영되는 해병대 캠프는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정식으로 운영하는 포항 해병대 캠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민간업체에서 해병대라는 이름을 해병대사령부측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해서 설립한 것들이었다.

이들 해병대 캠프는 특별한 허가 없이도 설립할 수 있어 수십 개 업체가 난립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해병대 캠프 교관들이 대부분 해병대 전역자들이거나 관계자들이 벌여 온 퇴직사업이었다.

해병대라는 명칭만으로 지자체나 농촌진흥공사, 수자원공사, 교육청 등 유관기관에서도 감히 간섭하지 못했고 그렇게 수 십 개나 성행하던 체험캠프들은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청소년들과 병영체험의 장점을 소개하고 연예인들도 극찬하던 캠프활동의 장점은 이 사고를 계기로 둘도 없는 위험천만의 장소로 전락했고 관련 시설은 모두 폐쇄조치 됐다.

그리고 사고이후 희생자들에게는 사고 당시만 보상관련 목소리가 높았지 슬그머니 미약한 조치로 넘어갔다. 대통령도 정치인도 등을 돌렸다. 이 대목은 인터넷 검색목록에서 공식적으로 등재된 내역이다.

지금 같았으면 야당에서 난리가 날 일이었고 즉각 대통령 하야 목소리가 높았을 일이다. 뒤늦게 정부가 해당 사건을 계기로 학생안전의 날로 제정하려 했지만 그나마도 2014년 세월호 참사후 4월 16일 국가안전의 날로 슬그머니 변경됐다.

그리고 남은 기념일이 해양경찰청에서 지정한 7월 18일 ‘연안안전의 날’인 것이다. 생명은 누구나 소중한 것이다. 사망한 인원수가 많거나 사망한 희생자의 나이가 어리거나 젊다고 더 슬픈 것도 아니고 이번처럼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생목숨을 잃었으나 장마가 그치고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고 대충 넘어갈 일도 아니다.

정치권이 밀어준다고 10년이 다 되도록 해마다 추모의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정치권이 외면한다고 별다른 후속조치도 없이 무슨 날인지 의미도 모르고 기념일만 정해놓고 넘어간다면 이는 산자가 망자를 차별하는 것이다.

반면 경기도 안산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15기의 유골함이 다시 합장되는 공동납골당이 착공에 들어간다. 65만 안산시민이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안산시 중심부에 다시 모여지는 유골함의 명칭은 416생명안전공원이다.

이제 안산은 50년, 100년 영원한 추모의 도시로 각인될 것이며 이를 불법으로 추진하거나 묵인했거나 방관한 자들에 대한 책임과 평가는 영원히 병행될 것이다. 안산시청 정문 앞에서 160회나 재검토를 주장했던 필자와 시민단체 화랑지킴이의 목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다만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명칭 어디에도 명시 되지 않은 공동납골당, 연안안전의 날 해병대 체험 캠프에서 희생된 이들과 너무나 다른 사후조치에 대해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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