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앉으면 눕고 싶고 사람의 본능이
[덕암칼럼] 앉으면 눕고 싶고 사람의 본능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7.20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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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문명의 발달 과정을 돌이켜보면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연구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단층 건물이 고층으로 올라가고 오르기 위해 계단이 생기고 그 계단에 손잡이가 생기더니 저절로 올라갈 수 있는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가 생겼다.

촛불이 전깃불이 되었다가 LED 전구로 교체되듯이 인간의 문명은 짧은 시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이제는 달나라도 가보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타이타닉호 심해관광에 도전하려던 꿈이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미지의 세계나 새로운 영역을 알고 싶은 꿈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유형적 발전은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성 있는 노력이지만 병행된 것이 문화, 예술, 제도, 복지, 인권 등 무형의 발전이었다. 물론 종교도 여기에 포함되고 정치와 외교, 풍습, 전통도 여기에 포함된다.

오늘 함께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것은 문명의 발전에 정신적 발전이 비례적으로 병행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공감대를 형성해 보고자 한다.

다른 모든 변화도 중요하지만,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며느리 민자영과 세력다툼이 빈번했던 시절, 대원군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며 쇄국정치를 주장했던 반면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려던 명성황후 민비와 정쟁을 벌일 때 한 번씩 권력이 이동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인재들의 목이 날아갔으며 고종의 가슴이 새카맣게 탔을까.

조선의 문명은 그때부터 뒤쳐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여 조총을 준비했던 일본과는 달리 정권유지에 급급해 일반 백성들의 눈을 가리며 조정대신들이 전하를 들볶던 당시 양당 정치의 혼란으로 인해 국민들만 피폐한 살림을 살았다.

일본의 항복이후 서구 문물의 검증되지 않은 도입으로 인해 조선의 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걸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서 가치를 잃었다. 위·아래가 사라지고 남녀의 구별이 없어지며 고용주와 고용인의 자리가 바뀌었다.

격동의 혼란기가 민주화를 거치면서 마치 새로운 세상이 되는 듯 했지만 현실은 어떤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민주화와 뒤섞이면서 자유라는 말은 보수주의 대명사로 변질했다. 촛불만 켜면 민주투사가 되었고 1980년대 감옥만 갔다 오면 그 과정이 어떠하든 정치후보자의 프로필이 되는 시대가 됐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9천860원, 월급(209시간 기준) 206만74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시급 9천620원·월급 201만580원)보다 2.5% 높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8∼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밤샘 논의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제로 근로자와 경영인들 간의 중간 교섭 역할을 하는 과정에 누적되었던 묵은 적폐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일단 원칙은 일을 시키는 자와 일하는 자의 당사자 간 고용계약은 제3자가 개입하거나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정치인들이 노동계의 편을 들며 감당하지도 못할 약속들을 마구 남발하는 무모함이 있었다. 그 근거로 서양의 노동법과 경제적 상황과 각종 지표를 들이대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했다.

서 있던 사람에게 앉아도 된다며 표를 구걸했다.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들은 할 줄 몰라서 안했을까. 토요일의 반공일과 잔업과 철야작업이 몸에 뱄던 1980년대 노동자들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세상이었다.

주 5일제도 모자라 대체 공휴일이 생겼고 이제는 주 4일제로 가야한다며 뒷일이야 어찌 되든 표를 목표로 한 공약은 둑이 터진 저수지처럼 마구 쏟아졌다. 근로 시간 뿐만아니라 임금도 정부가 고삐를 쥐고 뒷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달리다 보니 이제 앉아있던 사람이 눕고 싶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실업수당을 준다며 표를 얻다 보니 이제는 누워있던 사람이 다시 앉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다. 당초 서 있던 사람이었다. 하다하다 서 있는 사람보다 누워있는 사람이 돈을 더 받는 오류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최저임금 근로자의 월 근로소득은 179만9,800원으로 최저 월 실업급여 184만7,040원보다 적었다. 5년간 3번 이상 실업급여를 받는 반복 수급은 늘어나거나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반면 재취업은 현저히 떨어졌다.

노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돈을 더 받는다는 결과치가 드러나자 말도 안 된다며 난리가 났다. 갑자기 알게 된 사실일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뭐 하러 일하겠느냐는 근로의욕이 사라질 것이고 실업급여 하한가의 인하, 폐지를 포함한 지급액 및 지급 기간 조정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당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초 목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가 실직후 보다 안정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소정의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였다. 크게 구직급여와 취업 촉진수당으로 구분되는 실업급여는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급하기로 정해졌다.

그러나 제 아무리 거름 장치를 마련해도 이를 악용한 일부 얌체들의 잔머리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다. 엉뚱하게 새는 실업급여를 위해 땀 흘려 일한 근로자들의 월급봉투에서 반 강제로 공제되는 점을 고려하면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이다.

서구 문명의 검증 안된 제도들이 한국 땅에 상륙하면서 정권욕에 눈이 어두운 집단들의 표퓰리즘과 맞물려 빚어진 노동계의 재앙이다. 처음 필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서 있어야 할 사람을 잠시 쉬라는 게 아니라 아예 앉아있으라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 누워있던 사람에게 다시 서라 하니 누가 설 수 있을까.

때 묻은 장갑과 구슬땀이 밴 모자는 이제 외국인근로자들도 사용하지 않는다. 권력을 향한 욕심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던 국민들을 모두 앉거나 눕게 하고 그런다고 그 말에 현혹되어 누워 버린 국민들이 이제 다시 털고 일어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권력을 잡으려는 욕심과 놀고 돈 받으려는 이기심이 만들어 낸 사회적 참사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 번영의 현주소를 유지하려면 성공의 기반이 되었던 성실하고 정직한 자화상을 다시 그려야 한다.

돈 주는 자와 일 하는 자는 각자의 작업환경에 맞는 보수를 정하고 자본주의 기본원칙과 시장경제 논리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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