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세월이 약일까
[덕암칼럼] 세월이 약일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7.21 0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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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오늘 2020년 7월 21일 오전 8시 29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위치한 SLC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월 29일 오후 1시 32분 발생한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가 일어난 지 88일만이었다.

이미 2020년 4월 21일 오전 10시 30분 군포시 부곡동 한국복합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37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해 물류창고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로 달했을 시기였다. 이날 화재로 69명 중 64명이 대피하고 5명은 지하 4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상자도 8명 중 1명은 중상이었다. 지하 4층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이틀이 지난 후 냉동 창고에 서리가 끼는 것을 막으려고 설치한 온열기가 과열로 녹아내리면서 불이 난 것으로 잠정 결론 났다.

당시 불은 배수펌프실 벽재인 우레탄폼에 옮겨 붙은 뒤 유독가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유독가스에 질식된 인명피해였다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2020년 10월 26일 창고의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소방설비가 당시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환 국면으로 돌아섰다.

이미 설비 교체에 대한 의견이 있었지만 금전적 부담으로 묵살되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돈이 생사람을 잡은 셈이다. 법원은 이 화재로 물류센터 관리자 A씨 등 2명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는 금고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C씨에게는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양벌규정에 따라 관리업체에게 벌금 1000만원을 부과하며 처벌은 막을 내렸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유족들의 애를 태우다 종결된 사건이었다. 물적 피해도 429억8100만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물류센터 화재는 경기도만 하더라도 3년 동안 20여 곳에서 발생해 46명 사망, 25명 부상, 6251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앞서 어필한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는 더욱 처참했다. 총 38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재산피해는 76억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6월 17일 오후 5시 36분에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물류센터에서 큰불이 발생해 소방관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당했다. 인명피해 못지않게 물류센터 건물과 내부에 적재된 1620만개의 물품 및 포장지를 모두 태워 4743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2022년 1월 5일 오후 11시 46분에도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 팸스 물류창고 신축 현장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송탄소방서 소속 이형석 소방위, 박수동 소방교, 조우찬 소방사 등 3명이 순직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계속된 화재로 인적 물적피해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2021년 6월 물류창고 화재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작 시·군 및 주요 사업장에 배포했다. 이 매뉴얼에는 물류창고 개요와 화재예방조치, 화재 대응조치, 화재대비조치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매뉴얼이 얼마나 이행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용인 물류센터 화재 현장은 3년이 지난 현재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수리를 마치고 정상가동 중이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그 자리에 2004년 아크로비스타라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비를 사고가 일어난 장소에 지으려 했으나 참사가 일어난 곳이라는 것을 알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반발로 인해 무산됐다. 물론 용인, 군포, 이천 등 모든 물류센터도 위령비 하나 없는건 마찬가지다.

3년이 지난 지금 물류센터의 벽체는 드리이비트 불연소재로 대체되었는지, 불이 나야만 온갖 난리를 치며 정치인들이 누런 잠바입고 기자들 대동해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와는 달리 2021년 12월 29일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벽 터널 화재는 방음터널을 지나던 폐기물 집게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해 플라스틱 소재의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 붙은뒤 수백 미터에 이르는 구간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 화재로 5명이 사망 했으며 3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이유는 화재에 취약한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에 비해 열기에 강한 방염 소재지만 불연 소재는 아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사용한 폴리카보네이트가 화재를 더 키운 셈이다.

뿐일까. 지하 주차장의 벽이나 플라스틱 배수판도 화재 발생시 연소재로 돌변한다. 모두 돈이다. 싸고 쉽게 빨리 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당장은 좋겠지만 일단 유사시 대형화재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다.

필자도 지난 1월 27일 과천 봉담 간 도시고속화 도로 맞은편을 운행하다 화재 발생 순간을 직접 목격하게 됐다. 처음 연기가 조금 나던 것과는 달리 삽시간에 불이 확산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수 백 미터나 치솟았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은 인정사정없음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어찌 되었을까. 용인시의 경우 지난 19일 관내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소재의 방음터널에 170억 원을 투입해 불연성 자재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화재에 취약한 재료를 교체해 안전을 기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설치된 방음터널 24곳 중 화재에 취약한 PMMA 재질을 사용한 방음터널은 11곳 중 급한 순서대로 교체하는 것이다. 어디 용인시 뿐일까.

문제가 될만한 터널은 모두 교체해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용 빈도나 인원이 많은 터널만 예산을 편성할 게 아니라 물류센터의 안전관리에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간기업이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국가기간분야에만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인명피해 예방에 대한 편파적 행정이다.

투자가 어렵다면 까다로운 예방책을 만들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돈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과정이 주어지더라도 사람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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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2023-07-22 16:34:05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