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덕암칼럼]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7.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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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이 세상 어떤 사물이든 무형의 가치든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상류의 돌멩이도 물길에 의해 깎이다 보면 하류에서는 모래가 되고 가느다란 나무도 춘하추동의 과정을 겪으며 나이테도 늘어나고 오랜 기간 비바람을 이겨내면 커다란 고목이 된다.

사람 또한 태어날 때는 신생아지만 그 아이가 커서 어떤 인물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시간과 시대가 흐를수록 점차 새로운 것과 더 나은 것으로 변하며 그래야 인류의 찬란한 문화도 문명도 발전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현세대가 있으니 다음 세대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지 기차가 철길을 탈선하면 아무 의미가 없듯, 변화하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하면 변질되는 것이다.

오늘은 대표적인 변질의 예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짚어보자. 본디 우리민족의 오랜 성어 중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동급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자신의 태생이 되어 기른 공을 부모의 은덕이라 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가르치고 보다 나은 인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스승의 몫이었다.

물론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왕을 일체로 엮었으니 스승의 위치가 얼마나 은혜롭고 대단한지 가늠할 말이었다. 과거 한문에 의존하던 시절 서당의 스승이나 한양에 글공부의 대명사인 성균관에서는 스승을 하늘보다 더 높게 받들었다.

심지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선뜻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40년 정도 전에는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스승의 권한이 제자 훈육에 적용되면서 변화가 아닌 변질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명의 잘못된 의사는 한 사람만 망치지만 잘못된 교사는 여러 학생들의 미래까지 망친다. 바로 교육을 빙자한 변질, 변태적인 언행들이 스승이라는 명분으로 은폐되면서 그 위대한 교권은 점차 결자해지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교사들이 무슨 죄일까. 정작 교권을 권력으로 휘두르며 학생들의 인권을 발 아래 두었던 일부 교사들은 지금쯤 머리가 백발이 되어 저세상 사람이거나 이 세상에 머물러도 별스레 귀한 대접을 못 받을 퇴직교사들로 전락했다.

영화 친구의 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볼을 잡아당기며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며 묻자 “건달”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시계를 풀며 뺨을 수 차례 때리고 이에 격분한 학생은 학교 관둔다며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1980년 초 유행하던 장면이다. 이 때만 해도 선생님이란 위치는 학생을 마음 놓고 패도 되고 체벌을 줘도 되며 여학생들에게 성추행을 해도 아무런 대꾸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각한다고 패고 숙제 안 했다고 막대 걸레 자루로 패고, 책상위에 무릎 꿇어 앉혀 놓고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 위를 딱딱 소리가 나도록 때리고 떠든다고 복도에 나가 손들라고 시키고 걸핏하면 부모님 모셔오라고도 했다.

수업료 안 냈다고 칠판에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다. 일부 학부모의 돈봉투에 화색을 띠기도 하고 가정방문 한답시고 다니며 떡고물을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일부 국한된 교사들의 행태였다.

필자 또한 교생에게 차렷 자세가 흔들렸다고 불려나가 뺨 안쪽이 다 해지도록 수 십 차례나 맞은 적도 있었으며 지도부 교사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담당 교사의 당일 기분에 따라 언제 춤을 출지 모르는 난봉이었다.

그렇게 군림했던 교사들의 인권유린이 시대적 변화에 의해 학생인권조례로 귀한 자식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었으나 누가 알았으랴 학생인권이 교권추락과 맞물리면서 갑과 을의 위치 변경을 하는 작금의 시대가 됐다.

폭력이 난무했던 시절의 교사들이 뿌린 씨앗들을 현재의 똑똑하고 젊은 교사들이 감내하고 있는 것이니 이제는 스승이 사라지고 교사가 남았으며 교사보다 학원의 강사가 더 많은 돈과 우월적인 위치와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교사의 꿈을 안고 교대나 사범대학에서 죽어라 공부했던 과정이 막상 임용되어 근무해 보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 문을 닫아야 하는 폐교들이 늘어났고 반대로 학생들의 의식은 자유를 넘어 겁낼 것 없는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기성세대보다 더 빠른 인터넷의 발달로 교사의 지식은 인터넷 검색으로 대신하고 과잉보호에 극성떠는 일부 학부모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 해야 했던 현재의 교사들은 점차 주눅 들어 제자 사랑을 포기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교사 폭행사건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 잠재된 학생들의 불성실한 수업태도나 수업시간만 되면 모두 잠드는 일명 시체반의 현실은 학생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백년지대계의 미래가 암울한 것임을 증명하는 사례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남학생의 폭행으로 전치 3주를 진단받고 공포에 떠는 반면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학생 탓만은 아니라며 선생님도 잘못이 있다고 항변했다. 교사 커뮤니티 회원 1,800여명이 탄원서 작성에 동참했고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이 학교 1학년 담임인 20대 A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에서 A씨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던 중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렸다고 주장했고 학생들 간에 사소한 다툼에도 교사 자격이 없다거나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항의가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선생님에게 욕설은 기본이었고 물건을 던지거나 수 십 차례나 맞았다는 뉴스는 단순히 개인적인 잘못으로 치부하기에 너무 심각한 현상이다. 이 같은 현상이 하루 아침에 개선될까. 이전 세대가 저지른 과오를 현 세대가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스승은 스승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이 밥벌이가 주목적이어선 안 되고 무지한 자신에게 지식과 지혜를 더해주는 교사가 좋은 대학가는 가이드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최근 유행하는 킬러 문항에 대한 여론이 거품 꺼지듯 조용해졌다. 일반 국민들이야 족집게 과외를 꿈도 못 꾸겠지만 킬러 문항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혜택 본 기득권에서 잠재운 게 아니길 바란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 일, 이 땅에 열정적으로 제자들을 지도하며 진정한 애국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교사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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