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동물들의 모성애
[덕암칼럼] 동물들의 모성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02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그리 오래지는 않은 1987년 어느 강원도 시골마을에 할머니와 둘이 살던 어린 여학생이 원치 않은 임신으로 어린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었다.

마을에서는 누구 씨냐며 수군대기 시작했고 이내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동네 망신이라는 군중심리가 발동했다.

당시 이런 사안은 무조건 여자의 무책임으로 전가되던 시절이었는데 경찰도 행정기관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무성한 소문은 결국 타 지역으로 내쫒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사 갈 곳도 정해지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마을 사람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마당 한 쪽에 아기를 안고 있던 어린 산모가 고개를 숙인 채 온갖 욕설을 듣고 있었는데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자 한손으로 눈부신 아가의 눈을 가리며 젖을 물리는 모습에 누군가 말을 꺼냈다. “애가 애를 낳았어.” 하자 또 다른 사람이 “어려도 애 엄마잖아.” 이내 분위기는 지극한 모성애에 대한 감동으로 모두 힘을 합쳐 아이를 지켜주자는 쪽으로 급선회 했다.

시간이 흘러 신생아는 38살의 어엿한 모범공무원으로 자리 잡아 누구 못지않은 사회적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비슷한 시기 전자와 같은 사례였는데 애비 없는 홀어미자식 이라는 말이 두려워 친오빠 호적에 올리고 자신은 고모로 함께 친척처럼 살아온 것이다.

걸음마를 할 때부터 고모의 손을 잡고 커가던 아이가 우수한 성적으로 원하던 고등학교 입학 하던 날 교복을 입고 가족들과 사진촬영을 마친 후 고모와 둘이서 찍고 싶다며 몇 번이나 포즈를 바꿔 사진을 남겼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 폰으로 찍으면 바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필름을 맡기고 몇 일 이나 지나야 찾을 수 있었는데 사진관에서 찾은 사진을 고모에게 전하며 뒷면에 몇 자 글씨가 적혀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늘 함께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미 어릴 적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은 아이가 표현조차 못하고 혼자 속 앓이를 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위의 두 가지는 필자가 살던 강원도 어느 마을의 실화다. 이처럼 모성애의 본능은 불가능한 상황도 헤쳐 나가는 기적 같은 일을 만들 수 있다. 지구상 어느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출산부터 보육, 교육, 결혼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인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막상 결혼하면 코빼기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자식은 키울 때뿐인 화초라고도 한다. 사람이 이럴진대 오직 생존본능만 가진 동물은 오죽할까. 까치집에 알을 노리던 구렁이의 접근을 온갖 동작과 괴성으로 막던 어미 까치가 종래에는 자신이 먹이가 되어 자식을 구하는 동화속의 이야기도 있었다.

연어는 알을 놓기 위해 개천에서 바다를 돌아다니다 다시 회귀본능으로 상류에 알을 낳고 정작 자신은 생을 마감한다. 사설은 이쯤하고 사람이 사람을 낳고 사람의 젖을 물려 키우며 배설을 하면 더럽게 생각지 않고 치운다. 하다못해 개도 자신의 새끼 몸에서 생성되는 각종 부산물이나 핏덩이를 어미가 치우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낳은 자식을 포대기로 업고 안고 손목잡고 큰 아이는 앞서거니 둘째는 뒤따라오게 하고 5남매 7남매를 키우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죄다 대학 보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을 생산했다.

정작 당신 자신은 찬물에 밥 말아 신 김치 조각으로 허기를 때워도 자식들은 생선이라도 구워 먹이며 지금의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지나 자연분만은 끔찍한 산고를 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제왕절개의 출산방법으로 선호되고 있고 아가는 말린 소젖을 먹어야 하며 천 기저귀 대신 일회용 종이 기저귀로 대체 되었다.

업고 키우며 어미의 심장소리를 듣던 포대기 시대에서 멀찌감치 수 백 만원 하는 유모차에 태워져 거리를 나서는 모습이나 말과 글을 어미가 직접 가르치던 시대에서 걸음마만 걸으면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시대로 변했다. 내 자식을 맡겨놓고 어린이집 위생과 교사들의 근무여부를 염려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어머니와 엄마라는 정겨운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과묵하고 인자한 아버지와 아빠도 가정의 울타리지만 먹고 자고 집안일과 직결된 어머니의 그늘은 언제나 아이의 행동반경 안에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단어가 엄마, 아빠, 맘마 등이 있다.

그런데 만약 한글도 모르고 한국말도 못하는 보모가 아이의 교육을 맡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 시범 도입한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연말부터 서울에서 필리핀 등 외국인 근로자 100여명이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와 한 부모 가족, 임산부 등의 집에서 최소 6개월 일하게 된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국내로 들어오게 되는데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 도입한 제도로 농업·제조업·건설업·일부 서비스업 등에 한정해 E-9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여기에다 일부 서비스업에 가사·육아 서비스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 종사자는 점점 줄고 종사자 평균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를 들여오기보다는 한국인 종사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현재 한국의 실정을 논하자면 출산율 저하로 인해 가사, 육아 도우미가 급속히 줄고 있음에도 외국인 도우미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수요가 줄어도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과 같다. 그나마 대부분이 50대 이상 연령층이다. 아이를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돌보던 시대는 지났다.

내국인한테 맡기는 시대도 지났고 이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한테 맡겨야할 시대에 도래했다. 돌이켜 보면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부뚜막위에 가마솥 걸고 온 식구들 식사를 준비했으며 농사지어 자녀들 교육시켜가며 지금의 눈부신 대한민국을 이룬 인재들을 생산했다.

반면 8-90년대 낳은 아이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사회와 단절된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약 61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발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향후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동물도 자기새끼는 남한테 맡기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