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덕승재(德勝才)를 생각한다
[교육칼럼]덕승재(德勝才)를 생각한다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08.15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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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입추(立秋)가 지나고 처서(處暑)가 다가오니 조생종 벼를 심은 들녘에서는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빠르미’라는 조생종벼는 벌써 7월 말에 수확을 끝냈다는 보도도 있다.

이삭이 패는 들녘을 보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문득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도 떠오른다.

자신이 남보다 조금 더 배웠다거나,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를 누리고 있다거나, 어렵게 고시에 합격하여 사회적 신분이 상승했다고 우쭐대며 거들먹거리는 무리들을 보게 된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를 보고도 천륜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사회적 지위가 다소 높아졌다고 갑질을 하는 일부 관료나 위정자들을 보면 들녘을 향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를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하대하거나 괴롭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런 가정의 주방에서는 검은곰팡이와 독버섯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비탄스러울 뿐이다. 

덕승재(德勝才)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는 뜻으로 통감(通鑑)에 나오는 말이다. 통감은 중국 송나라 때에 소미 선생 강지(江贄)가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요약한 책이다. 편년체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통감』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교재로 널리 쓰였다.

덕승재 위지군자(德勝才 謂之君子), 재승덕 위지소인(才勝德 謂之小人)이라 했다. 즉, 재주보다 덕으로 행하면 군자요, 덕이 아닌 재주로 행하면 소인이라는 뜻이다. 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나 노인대학 인문학 강좌가 있을 때마다, 이 덕승재(德勝才)라는 말을 강조한다.

덕승재(德勝才)는 고광림(1920~1989)·전혜성(1929~ ) 박사 부부의 가정교육 철학으로 더 유명해졌다. 남편 고광림 박사는 제주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럿거스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1952년 제16차 UN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1960년 서울대학교 교수, 주 미국대사관 공사를 거쳐 1961년에는 예일대학교 방문교수로, 호프스트라 대학교 부교수로 활약했다. 5년 뒤인 1966년에는 코네티컷 주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아내 전혜성 박사는 경기여고 졸업 후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 보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학 박사,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에서 강의하고, 예일대 비교문화 연구소 연구부장으로 재직했다. 1952년에는 동서양의 문화 이해를 상호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를 계승한 동암문화연구소에서도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덕승재’를 가훈으로 가정교육을 실천하여, 모두들 훌륭한 인재로 만들었다. 첫째 딸 경신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MIT 이학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첫째 아들 경주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보건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둘째 아들 동주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의사이며, 셋째 아들 홍주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법대 석좌교수와 로스쿨 학장을 역임한 후 2009년부터 미행정부 법률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하버드대 법학박사인 둘째 딸 경은은 유색인종 여성 최초로 예일대 로스쿨 석좌 임상교수가 되었으며, 막내아들 정주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전혜성 박사는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고 “공부하자”고 말했으며, 집에 책상을 여럿 두고 남편과 자신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한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 전 박사의 생각이다.

이들 부부는 매주 금요일 저녁 가족회의를 열어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했는데, 정식으로 기록도 하고 공식적인 용어, 절차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했다.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았고, 그날의 목표량을 스스로 정해 그것부터 끝마치는 습관을 들게 했다. 공부만 할 줄 알고 생활에서 무능력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조금씩 분담했고, 아이들이 조금 컸을 때는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무엇보다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고,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그런 까닭에 이들 가족은 1988년 미국 교육부에 의해 ‘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연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미국사회에 공헌한 역대 재미 한국인 100인 중 4명이 포함될 만큼 미국인들도 부러워하는 가정을 이루었다.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덕이 모자라면 그 재주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다. 자신의 재주를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쓴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 재주를 남을 해치는 일에 사용하거나 사회를 향해 악덕을 일삼게 되면 독버섯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승재는 날로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는 이 시대에 성숙한 시민들이 지향해야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재주를 공익을 위해 사용하고, 재주보다 덕을 앞세울 때 관용과 배려가 넘치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덕승재(德勝才)의 뜻을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실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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