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까
[덕암칼럼]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18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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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나라 꼴이 망국의 상한선을 넘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한 이재민들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여당과 야당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사태에 대해 서로 남탓하기 바쁘고 온갖 기상천외한 단어로 요란을 떨던 기상청의 일기예보도 서울과 수도권을 용케 비껴갔다.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의 가계지출이 크게 늘어 물가상승으로 밥상만이 가벼워질 조짐을 보인다.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는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집이란 당초 주거 목적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산증식의 통로가 되어 손만 대면 로또가 될 수 있는 투기목적의 현실적인 이정표가 됐다.

문제는 이런 집을 짓는 과정에서 철근을 사정없이 빼먹는 이른바 날림공사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일이지만 속살을 파보면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이어져 왔던 일이었다.

한두 곳도 아니고 한두 집도 아니다. 설계부터 감리, 시행, 시공, 하도급, 품떼기 계약, 자재 납품업체는 물론 공사현장 식당 주인까지 모두 알 수 있는 비리 천국의 건설현장은 모두가 공범이다.

묵시적 침묵은 인정이라 했다. 설령 부실시공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눈감고 귀 막았다면 이 또한 방관자로서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최종 피해자는 입주자다.

평생 모아 내 집 마련의 꿈이었던 입주자 입장에서는 이번 철근 없는 순살아파트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콘크리트 안에 숨겨진 철근 구조를 무슨 수로 다시 찾아낼 것이며 설령 찾는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니 혹여 지난번처럼 붕괴 사고가 난다면 다시 오두방정을 떨며 그때만 난리 치고 말 것인가.

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까. 다행히도 설계도면대로 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준 부실공사 현장이 고마울 따름이다. 진짜 공범은 다시 재생될 수 있다. 아파트값 내려간다고 쉬쉬하며 함구령에 공감한다면 이 또한 아파도 아프단 말을 못 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할 입장이다.

부실시공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쩌다 재수가 없어 걸렸다는 하소연이 들릴 정도니 실제로 부실시공으로 사회적 참사가 발생한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건설 관련 악재들은 시간이 약이었다.

최근 LH에 대한 자구책이 국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1962년 주택공사가 설립됐고 아파트 사업으로 전국의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던 시절 1996년에는 100만 호 건설의 주역이기도 했다.

이후 2008년 12년 만에 주택건설 200만 호를 달성하고 집 지을 땅도 있어야 했으니 1975년 토지금고를 설립한 이래 1979년 지금의 한국토지개발공사로 확대 개편된 이후 국내 굵직한 신도시 개발을 이끌어 온 바 있다.

그렇게 일국의 발전과 동행했으면서 공기업의 가치와 신념을 훼손하고 지금 같은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을까. LH의 본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09년 출범했다. 이후 2017년 임대주택 100호를 공급하며 집 없는 서러움의 구세주 역할도 했었지만 어떤 조직이든 일장 일단은 있는 법이다.

이뤄낸 성과 못지않게 문제점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LH의 경영원칙 첫 번째가 청렴공정이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가 부정부패 근절과 두 번째가 윤리경영이라 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법과 원칙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가. 물론 ‘일어탁수’라고 일부의 허물이 전체의 노력을 갉아먹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그 어떤 부정도 합리화될 수 있기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적시해야 한다.

LH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이한준 사장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 하겠다고 했다. 이한준 사장 스스로가 일부 직원들의 일탈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과오를 바로잡고 국민을 위해 힘껏 봉사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독백과 허언이었는지는 이번 순살아파트로 여지없이 드러났다.

2022년 11월 취임한 이한준 사장은 이번 일에 대해 취임 이전에 벌어진 일이니 어쩌면 과거의 인사들만 탓할 수 있겠지만 책임자의 위치는 과거와 현재를 떠나 대표성을 가진 만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액션을 취해야 맞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철근 누락 상태가 가볍다는 이유로 단지 5곳을 발표에서 제외했고 총책임자인 이한준 사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경영진은 결국 자진사퇴로 쇄신을 다짐했다.

이 사장은 LH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 표현으로 전체 임원 사직서를 받고 LH를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여차하면 본인도 임명권자인 국토교통부와 정부 뜻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쯤 되면 LH는 국민 앞에 맨몸으로 처벌을 받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논란이 된 무량판 단지가 적용된 10곳을 조사 대상에서 빼먹었고 실제로 철근 누락 단지도 20곳임에도 15곳이라고 발표했는데 이 부분이 의심쩍은 대목이다.

문제가 없다면 제대로 조사하면 될 일을 누가 왜, 어떤 방식으로 개입되었기에 이리 빼고 저리 뺐을까. 누락된 5곳 중 준공된 것은 3곳, 공사 중인 단지는 2곳이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는데 이미 지은 집을 어쩔 것인가.

기계도 아니고 사람이 해먹을 마음만 있다면 그 방법은 감사나 검사나 조사가 파헤치기 어렵다. 이 사장은 2009년 LH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통합하면서 조직이 비대해지고 나눠 먹기가 생겼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또한 공기업의 공인은 본인 의사보다도 임명권자의 의사가 더 중요한 만큼 사직의 각오로 언제든지 뜻에 따를 준비가 돼 있고 언제 떠나더라도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떠난다고 될 일인가.

남아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다. 가장 큰 칼자루를 쥐고 있는 감리 선정 권한을 LH에서 떼 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2021년 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당시 조사결과는 실형 1명으로 그쳤다. 엄청 요란했던 언론보도와는 달리 유야무야 넘어간 셈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꼴이 재발하는 것이다.

당시 경찰이 수사 대상에 올린 현직 LH 직원은 48명, 이 가운데 직원은 지금까지 1명이다. 그 와중에 4명은 벌금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무혐의로 종결됐거나 여전히 재판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러니 누가 두려워할 것이며 관련법을 솜방망이로 안 여길 것인가. 까치는 바람 불 때 집을 짓는다고 한다. 평온할 때 지었다가 바람 불면 날아갈 수 있으니 그런다는 것인데 까치보다 못한 집짓기를 사람이 하고 있다.

정교한 개미집도 그렇고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도 그러하다. 적어도 조류나 곤충보다 못한 집짓기라면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아파트는 거미처럼 주거와 사냥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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