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누가 누굴 탓하랴 전관예우
[덕암칼럼] 누가 누굴 탓하랴 전관예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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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철근누락' 아파트 후폭풍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세부적인 내용을 파헤치자니 일부 공급에 대한 감소 우려까지 나타났다.

이미 전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철근누락 사건의 내부 비리가 예상치를 넘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다. 대체 얼마나 해 먹었기에 문제가 된 아파트를 전수조사하고 원위치로 돌려놓으니 공공주택 물량이 감소될까.

일단 설계·감리용역을 중단한 건수는 총 34건에 1,540억원 규모다. 특히 전관업체와의 계약 11건이 전면 해지됨에 따라 2,800세대 정도의 아파트 공급 물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 공급물량이라는 게 배급소 쌀 나눠주듯 일시적으로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설계부터 시공까지 복잡한 구조가 맞물려 있다. 어디 한 군데를 툭 자르니 연결되었던 머리와 꼬리가 모두 꿈틀거리는 것이다.

문제는 ‘전관예우’라는 4글자가 등장하면서 국민들이 이건 뭐지 하는 물음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에 근무했다가 퇴직하면서 개별 회사를 차리거나 기존의 회사에 명함을 걸고 주택시장에 개입하면 이래저래 막대한 이익과 감리·감독의 불편한 진실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인데 얼마나 썩었으면 파헤치기 겁날 정도로 주택시장이 휘청거릴까.

결국 LH가 전관업체와 맺은 모든 용역을 중단키로 하면서 하반기 발주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게 됐다. 여기서 또 나오는 것이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다. ‘카르텔’이란 동일업종의 기업들이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다는 뜻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 누가 감히 끼어 들 수도 없고 설계, 감리, 입찰·심사 등 전방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LH는 올 하반기 총 8조2,000억원 규모의 공사·용역을 발주할 것이라 밝혔는데 공사 부문은 7조7,000억원, 용역은 5,000억원 규모다.

물론 당장 재공고를 내야 하는 설계·감리용역 규모는 총 1,500억원으로 총 발주 규모의 3%에 불과하지만 원점에서 설계·감리를 재입찰 하게 되면, 결국 해당 사업의 공사 입찰이 지연될 것은 당연하다.

뒤늦게나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0대 제도개선안을 제시했다. 경실련은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개선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부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 불법고용 근절과 지역건축안전센터 설립 의무화, 그리고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의 감리계약 직접 체결과 설계 비용·감리대가 등 지출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문제가 된 전관 영입 업체의 출신기관 발주 사업 입찰참가 원칙적 금지 등도 제안했다. 전관예우란 이미 LH 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반에 걸친 폐단이다. 한때 판·검사가 옷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하면 전관예우가 문제되어 법의 형평성이 논란의 소지가 된 바 있어 일정기간 타 지역에서 개업하게 됐다.

검찰 직원이 법무사를 차리거나 세무서 직원이 세무사를 개업하는 것도 엄연히 경륜을 전문 직종에 첨가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과연 어제까지 근무했던 관공서의 정문이 하루아침에 낯설고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을까.

LH처럼 따진다면 전관예우의 상한선은 끝이 없을 것이다. 어제까지 장군이던 별자리 군인이 퇴직하면 이등병에게도 출입문에서 제재 당하는 것이 원칙이고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낙선하면 전직 의원의 배지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전직과 현직에 대한 구분인데 예비역과 현역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존의 영광에 연연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디 LH 뿐일까. 공기업의 낙하산이 그러하고 선거에 당선된 자들의 자리다툼 또한 그러하다.

깜냥도 안 되는 자들이 모두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처럼 자유경쟁을 방해하는 것이며 정작 능력 있는 인재들이 외곽을 빙빙 돌며 혀를 차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관예우의 폐단을 접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현직이 예비역으로 임기를 마치면 먹고 살길이 과거와 달라 어딘가에 기대야 하는 입장으로 전락한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한국인의 정서상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퇴직자들의 미래까지 어느 정도 챙겨주는 건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누군가는 와야 할 자리를 꿰어 차고 앉아 밥만 축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새삼스럽게 LH만 잡을 게 아니라 이 참에 어설프게 차려진 밥상에 수저 얹어 놓고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밥벌레들을 모두 솎아내야 한다. 결국에는 소중한 혈세를 모기처럼 쪽쪽 빨아먹고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버티는 한량들이 멀리 보면 이 나라 미래를 잠식하는 기생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나름 경륜을 현직에 발휘하여 밥값을 한다면 당연한 지적이라고 수긍하겠지만 반대로 밥벌레에 해당 된다면 발끈할 것이다. 업무추진비로 관내 맛집만 골라 다니며 기름진 배를 채우지 않았는지, 별로 할 일도 없으면서 초과근무수당에 온갖 출장비를 부풀려 혈세를 도둑질해서 지갑을 채우지 않았는지.

찾아내서 아닌 건 아니라고 추려내야 공직사회도 건강하고 기존에 나름 노력하는 직원들도 자긍심과 희망을 꿈꾸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LH 잡들이 한다고 근절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집무실에 CCTV 설치하고 일주일만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아예 뿌리뽑지 못할 것이라면 LH를 덮어야 한다. 괜히 집짓는 사람들만 피곤하고 입주자들만 불안하며 그리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지난번 LH땅 투기사건 때도 요란한 소음과는 달리 빈 그물만 거두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는데 전관예우라는 사회적 암 덩어리만 버티고 있다. 문득 영화 ‘친구’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지 잔머리 굴리며 기생충 같은 종족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새치기 하는 종족들이 먹는 고기는 착하게 줄서 있는 사람들의 살점이고 얌체족들이 마시는 향기로운 술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피와 땀이다. 당장에 연결되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은 돌고 돌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같을 길을 걸어오며 이어져 온 폐습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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